◇묘지 위의 태양/이태동 지음/300쪽·1만2000원·동서문화사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쓴 산문 50편을 모아 엮은 이 책에는 그가 깊은 사유와 관찰을 통해 얻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 있다. 문학과 비평, 사회과학 분야 저변을 두루 탐구해 온 학자이기에 선인들의 지혜와 학문적 지식도 쉬운 표현으로 녹아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법조인 친구,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수녀 제자 등 저자의 경험에서 얻은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본연에 대한 통찰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파스칼의 소설 ‘팡세’를 인용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즉 이성적인 존재 이상의 무엇이라고 설명한다. ‘우물가에서 수면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을 길어 올리려 두레박을 내리는 처녀’처럼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하지만 끝내 허무해지는 게 사람이다. 어느 미국 시인이 노래했듯이 ‘죽음이란 밤이 찾아와도 한 그루 나무를 보기 위해 창을 닫지 않는’ 게 사람이다. 저자의 문장은 무력하지만 무력하지 않은 우리 존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