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열전사
27일 부산 기장군 열전사 공장에서 만난 김종진 대표가 알루미늄 용탕에 직접 투입되는 히터의 작동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900도의 열을 내는 이 히터를 개발한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세라믹 막대가 열을 내면서 점점 붉어지는 게 보이시죠? 기존 제품보다 부피를 16분의 1이나 줄인 획기적인 기술입니다.”
27일 부산 기장군 용수공단에 위치한 ㈜열전사 공장. 담담하게 기계의 작동 원리를 소개하던 김종진 대표(46)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힘이 느껴졌다. 열전사는 산업용 히터 등 열처리 기계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다. 흔히 히터는 난방기기로 알려져 있지만 산업용에서는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자동차 철강 등 각종 제조 공정에서는 고온을 이용한 작업이 필요한데 이때 수백 도 혹은 1000도 이상의 열을 내는 기기가 히터다. 또 업계에서는 이런 히터가 장착된 기계를 전기로(電氣爐·전기를 열원으로 하는 노)라고 부른다. 열전사는 주문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히터와 전기로를 생산해 공장에 납품하고 장착하는 것이 주 업무다.
김 대표가 소개한 제품은 올해 국산화에 성공한 히터다. 알루미늄 합금이 녹아 있는 이른바 ‘알루미늄 용탕’에 직접 투입되는 히터로 국내에선 만들지 못해 그동안 프랑스 수입품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이 당장 급한데도 수입이 늦어져 제조 현장에선 불만이 많았다. 김 대표는 “한 자동차 생산회사에서 히터 전문 업체들을 상대로 이 기계를 개발하면 우선 구매하겠다고 제안해 뛰어들었다. 국산화에 성공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도전하는 걸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부친이 1988년 설립한 열전사는 ㈜대한히타, 대한에프앤엠테크㈜ 등 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들은 고온히터, 저온히터, 전기로·단열시공을 각각 전문으로 한다. 3개사의 전체 매출액은 100억 원, 직원은 모두 30명이다. 김 대표는 “부산 경남에 산업용 히터 관련 회사가 30여 개 있는데 대부분 전문 분야가 세분화돼 우리처럼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며 “전기로와 이를 담는 구조물뿐 아니라 전기 컨트롤러, 단열재 등을 모두 결합해 완성품 형태로 설치해 주기 때문에 기기 유지 관리나 사후 서비스에 강하다”고 자랑했다. 열전사는 소규모 영세 공장에서부터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까지 거래처가 1000군데가 넘는다.
하지만 입사 1년 뒤 큰 위기가 닥쳤다. 많은 직원이 한꺼번에 퇴사한 뒤 경쟁 업체를 차린 것이다. 김 대표는 전국 곳곳을 돌며 등을 돌린 거래처를 찾아 설득하는 등 그동안 겪어 보지 못한 온갖 경험을 다해 봤다. 그는 “오직 열심히 일하는 거 외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작업을 하다 기계에 손가락을 다쳐 크게 수술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직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 거래처가 차츰 돌아왔다. 김 대표는 “기술 연구개발(R&D) 비용을 늘리고 산학협력을 강화해 기술력이 좋은 회사, 직원들이 대접받는 회사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