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판결 80건중 1건만 실형… 낙태죄 처벌조항 사실상 사문화 이혼소송중인 남편이 고소하거나 병원 위법행위 진정서 접수되면 수사 나서지만 법과 현실 괴리, “헌재 위헌여부 결정 서둘러야”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올 9월 경남 남해의 A산부인과에서 26명의 여성에게 임신중단(낙태) 시술을 했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접수돼 수사했고 이 중 5명이 낙태 시술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검찰과 협의해 불기소 처분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A산부인과 원장 이모 씨는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으나 경찰은 이 씨 또한 기소하지 않을 방침이다.
낙태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더라도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재판에 넘겨진다고 해도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거의 없어 낙태죄 처벌 조항이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낙태죄 관련 고발이 접수되면 수사는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지만 임신중단 시술자 명단과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진정서가 접수돼 수사는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9월 접수된 진정서에는 A산부인과에서 낙태 시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26명의 개인정보와 시술 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불법 행위를 알리는 진정서가 접수된 이상 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경기 북부 지역의 한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남편이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낙태 혐의로 고발해 수사한 적이 있는데, 이후 남편이 고소를 취소해 수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면서 “고소인들이 재촉하기에 경찰이 자의적으로 수사를 중단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한 경찰은 “의료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경찰이 먼저 ‘인지 수사’를 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과 법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재의 결정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올 5월 낙태죄 위헌 여부에 관한 공개변론을 열었지만 판단은 미룬 상황이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죄가 형법상 위법 행위로 규정된 이상 일선 수사기관에선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며 “헌재에서 결정을 서둘러 낙태의 허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민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