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서도 편향인사 심각
블랙리스트 사태가 촉발된 문화계의 주요 기관장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더불어민주당 및 대선캠프 출신이 대거 포진했다. 본보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문화계 기관장 24명을 분석한 결과 13명(54%)이 민예총, 민주당,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으로 나타났다. 문화계에서는 편중 인사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전문성보다 코드
예술인에게 연간 2000여억 원을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박종관 위원장(59)은 민예총 충북지회 이사장을 지냈다. 민예총 부회장이었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같은 충북 출신이다. 박 위원장은 예술위 1기 위원,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김철호 국립극장장(66)은 민예총 산하 한국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62)도 민예총 산하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을 지냈다. 정희섭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60)는 민예총 정책실장을 맡았다.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장(56)은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SNS본부 부본부장을 지냈고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45)과 방송인 김제동이 소속됐던 다음기획(현 디컴퍼니)의 대표였다. 이승열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사장(60)은 민주당 문재인 대표 방송분야 미디어특보, 양현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54)은 민주당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상임정책위원을 각각 지냈다. 김도일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56)는 민주당 권리당원이었다. 이미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55)은 이전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배기동 중앙박물관장, 김철호 국립극장장 등 일부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낮은 인물이 대부분이다. 한 기관의 경우 대표 임명 소식이 전해지자 직원들이 “처음 듣는 이름이다. 프로필을 봐도 어떤 인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대표와 관련된 정보를 수소문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성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물이 많다는 의견이다.
○ “예술 발전시킬 인물 찾아야”
청와대 행사에도 코드가 맞는 연예인이 자주 출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우병 사태 때 청산가리 발언을 한 배우 김규리에게 한-프랑스 우정콘서트의 사회를 맡긴 것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출마 영상 음악감독을 했던 김형석 작곡가는 남북 정상회담 공연에 참여했고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공연도 연출했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찬장에서 울려 퍼진 문 대통령 행진곡 ‘미스터 프레지던트’도 김 씨의 작품이다. 디컴퍼니 소속인 윤도현도 남북 정상회담 만찬 공연에 참석했다. 한 문화계 인사는 “톱 연예인은 청와대 행사에 참여해도 달라지는 게 별로 없지만 톱이 아닌 연예인은 청와대 행사 후 몸값이 크게 치솟는다”며 “탁현민 행정관이 철저히 이너서클에 기회를 몰아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의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블랙리스트로 상처받은 예술계를 치유할 역량 있는 인사를 발탁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임에도, 편파적 인사로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능력 있는 인물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인선 과정에서 현장 예술인들과 폭넓게 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재엽 연극 연출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인물을 검증하고 선발하는지 예술인들과 일정 부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 보은 인사에서 벗어나 실력 있는 인물이 긴 안목으로 예술행정을 펼쳐야 예술이 발전하고 공공성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