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여자아이에게 ‘꽃돼지’라고 부르는 남자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니 ‘돼지’는 아니지만, ‘꽃돼지’는 복스럽고 귀여운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에서 ‘폿차리게이(ぽっちゃり系·귀엽게 통통한 계열의 사람)’와 같은 뜻의 ‘고부타짱(こぶたちゃん·새끼돼지)’ 느낌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이보다 더 애정을 담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느껴진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자기 자식이나 애인을 부를 때 ‘돼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만나곤 한다. 이것들은 살짝 해학적으로 애정을 강조하는 한국다운 표현으로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 전시는 오랫동안 사람 곁에서 함께 살아왔던 돼지의 상징성과 지금도 사람들 곁에 공존하는 돼지를 보여준다. ‘해신 비갈라대장’, ‘(저팔계) 잡상’, ‘십이지번(돼지)’ 등을 비롯해 ‘돼지 저금통’까지 70여 점의 유물과 사진, 동영상이 전시됐다. 제주의 ‘똥돼지’를 소개하는 부스에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체험을 하며 사진도 찍을 수 있어 방문한 관람객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는데, 특히 어린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다.
일본에서 십이지의 막내는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다. 멧돼지는 ‘저돌맹진(猪突猛進·목표를 향해서 곧바로 매진하는)’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는 새해에 현관이나 거실 장식장에 그해 십이지 인형을 놓아둔다. 지나간 인형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다가 해당하는 해가 되면 다시 꺼내 장식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에 화려해 보이기도 한다. 12년 전, 36년 전, 48년 전, 60년 전의 인형을 보며 그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얘기꽃을 피운다.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고등학교에 합격하던 해,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다니다 집에 왔던 어느 해 등 가족이 한자리에서 추억을 얘기하는 즐거운 시간을 안겨준다. 나와 남편이 한국의 가족들에게도 이 십이지 인형을 선물하면 무척 좋아하고, 다른 장식장 안에 놓인 지난해의 인형들을 보며 얘길 나누곤 한다.
일본에는 고양이가 십이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이 십이지를 결정하는 날을 알릴 때 낮잠을 자던 고양이는 이날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쥐에게 물었더니 쥐는 거짓말로 다음 날을 알려줬다. 그래서 십이지를 결정하던 날에 가지 못했던 고양이는 아직까지도 쥐와 사이가 나쁘다고 한다.
이렇듯 십이지는 한자 문화권을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나라에 채택되어 있으며, 나라마다 조금씩 동물들이 다르다. 일본처럼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인 나라는 러시아, 몽골, 불가리아, 인도 등이다. 놀라운 것은 고양이 띠도 있다는 것이다. 태국, 티베트, 베트남에서는 토끼 대신 고양이가 들어간다. 또한 몽골에서는 호랑이 대신 고양이가 들어간다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나 우리 고양이에게는 적잖이 부러운 일이다.
올해를 황금돼지의 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의 풍요로운 돼지의 이미지와 일본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멧돼지처럼 모두가 풍성한 복을 누리고 소원 성취하는 빛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