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현 작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알자스 시아버지께서 세 개의 카드를 보내왔다. 나와 레돔, 그리고 손자에게. 세 사람에게 세 개의 카드를 보냈지만 내용은 전부 비슷했다. 함께 못 해서 아쉽고 선물 대신 계좌로 얼마를 송금했으니 원하는 선물을 사라는 것이었다. 손자에게는 매달 10유로씩 넣는 것까지 합해서 320유로가 들어갔다는 계좌 명세서까지 함께 보냈다.
“아버님은 참 대단하시다. 작년에 보낸 카드와 내용이 하나도 안 달라. 적어도 선물의 가격이 5퍼센트는 올라야 되는 거 아니야? 벌써 10년째 100유로에 동결되었어. 유로가 하락해서 사실은 선물값이 삭감된 거나 마찬가지야.”
“그냥 선물이니 받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열 번은 이렇게 묻고 대답해야만 그냥 받았다.
“프랑스는 사회주의라는데, 그건 많이 번 사람이 적게 번 사람들이랑 나눠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하잖아. 그러니까 아버님은 우리한테 돈 좀 더 써도 되는 거 아니야? 어려운 자식한테는 좀 더 주고 넉넉한 자식한테는 좀 덜 주고,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어야지 너무 빡빡하셔. 꽉 막혔어 진짜.”
나는 시아버지의 금전적 철두철미함에 곧잘 불평했다. 가난한 자식에게 더 주는 것은 부모의 권리라는 주장을 폈다. 시아버지는 어깨만 으쓱했다. 가족들뿐 아니라 친구들과 신년 파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순이 가까운 마을 친구들이 모두가 비슷한 금액으로 나누어 파티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갔다.
신년을 앞두고 시아버지는 아들과 길게 통화를 했다. 올해만 해도 동네 친구들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왜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이토록 짧은지, 여자들은 다들 저렇게 건강한데 왜 시어머니 루시는 먼저 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슬퍼했다.
“신이 주는 이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겠지.”
시아버지가 우울한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그가 신이라면 인간의 수명도 공정한 절차를 거친 뒤 정확하게 계산해서 평등하게 주었을 것이다. 이럴 때 좀 친절히 다독여 주면 좋으련만 며느리는 참 얄밉게 새해 인사를 한다.
“그렇게 매사 공정하기만 하다면 사는 재미가 있나요.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것이 신의 선물이겠죠. 아버님 해피 뉴 이어! 올해도 건강하시고 내년 노엘에는 선물값 제발 좀 올려주세요!”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