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하나센터 997명 개인정보 유출에 국내 탈북민들 불안
지난해 12월 30일 탈북민 A 씨는 “최근 트라우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과거 탈북을 시도했다가 중국에서 붙잡혀 두 차례나 북송된 경험이 있는 A 씨는 2011년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 A 씨는 최근 탈북민의 국내 정착을 지원하는 경북 지역 하나센터에서 직원이 사용하던 컴퓨터가 해킹을 당하면서 이 컴퓨터에 담겨 있던 탈북민 997명의 이름, 나이,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A 씨는 “경북 지역 탈북민뿐 아니라 한국에 정착한 3만여 명의 탈북민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10년 전 탈북한 B 씨(43)는 “(북한에서는) 탈북민이 중국으로 갔는지, 한국으로 갔는지가 불명확한 경우엔 ‘행방불명자’로 본다. 하지만 이번 개인정보 유출로 한국으로 들어간 게 확실해지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처벌 수위도 높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탈북자들은 주민번호를 포함한 자신들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한다. 탈북민들은 이번 하나센터 해킹 피해뿐 아니라 이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더 있었을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 탈북민 C 씨(42)는 “개인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 자체보다 개인정보 유출로 언제 어디서나 감시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해킹 피해가 발생한 이후로도 약 한 달간 정부가 이를 파악하지 못해 탈북민들을 위험에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2001년 탈북한 D 씨(36)는 “안전하게 살려고 목숨 걸고 한국으로 왔는데 한국에서조차 불안감을 갖고 산다. 정부가 북한 눈치만 보고 탈북민들을 귀찮은 존재로 볼 게 아니라 신변 보호와 안전 문제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한 탈북단체의 송년행사에 참석한 500여 명의 탈북민 사이에서도 정부를 원망하는 얘기가 많이 오갔다고 한다. 이 행사를 주최한 탈북민 E 씨는 “정부는 탈북자가 남한으로 오는 것도 반기지 않던데 여기 온 사람들의 정보까지 유출시켰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탈북자들이 정부를 원망하다 보니 행사 분위기가 매우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민 사이에서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탈북민 개인정보를 유출시켜 탈북민들을 입막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고 한다. 최근 남북 평화 분위기에서 정부가 탈북민을 방해되는 존재로 여기고 ‘압박 카드’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민곤·심규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