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대 1 경쟁률 뚫은 영예의 9인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지난해 12월 26일 모인 201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용기와 긍지를 갖고 끝까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해나(중편소설) 강대선(시조) 김채희(영화평론) 최상운(희곡) 최인호(시) 고지애(시나리오) 박다솜(문학평론) 민경혜(동화) 장희원 씨(단편소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자는 전년보다 85명이 늘어난 2345명. 이 가운데 9명이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이들은 “기쁨의 무게만큼이나 어깨도 무겁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생 두 아들의 엄마인 민경혜 씨(40·동화)는 아이의 담임선생님,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하는 북 토크 모임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다. 손이 덜덜 떨려 집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꿈같은 상황이 거짓말은 아닐까, 깨져 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다.
민 씨는 수년 전부터 공모전에 닥치는 대로 응모했지만 매번 떨어져 낙심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여덟 살 난 막내아들이 직접 종이 상장을 만들고 상금으로 600원을 건넸다. 그는 “아들들이 ‘엄마의 동화가 제일 재미있다’고 위로해 준 덕분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웃었다.
최상운 씨(34·희곡)는 동네 도서관에서 미국 소설가 토머스 핀천의 책을 읽던 중 당선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걸어 나가는 15초 남짓한 시간 동안 ‘혹시 내 작품이 잘못돼 책임을 묻는 전화는 아닐까’ 하는 걱정을 비롯해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는 방바닥을 긁으며 자괴감에 몸부림쳤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최 씨는 “막상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고 말했다.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강대선 씨(48·시조)는 “가슴이 미어지는 기쁨을 느꼈다”며 “운동장을 향해 ‘이얍’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된 고지애 씨(31)는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글을 썼다. “주변에서 ‘돈 벌어라’라는 등 온갖 구박을 받았지만 꿋꿋이 버텼어요.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나 됐다! 약 오르지!’라고 자랑했죠.”(고지애 씨)
수년간 문학평론을 준비해 온 박다솜 씨(29)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지칠 때마다 당선 소감문을 미리 써 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당선자들은 부족한 글이 세상에 나온 것 같아 부끄럽다고도 토로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인 성해나 씨(24·중편소설)는 “굉장히 무거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아직 동기들에게도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김채희 씨(29·영화평론)도 “나만의 시각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히 깨닫고 좌절한 적이 더 많았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쓰고 배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아 컴퓨터 프로그래밍학원에 등록했었다는 최인호 씨(31·시)는 “되돌아보니 열심히 살 때보다 허투루 시간을 보낼 때 글이 잘 써졌던 것 같다. 뭔가 만족하게 되면 펜이 멈출까 봐 두렵다. 당선된 후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늘 스스로 비워내겠다”고 말했다. 9세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장희원 씨는 매일 한 문장 이상 쓰는 것을 목표로 하며 글쓰기 자체가 습관이 되게끔 노력해왔다. 장 씨는 “‘앞으로도 이 자세를 꾸준히 유지해 나가자’, 이거 하나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당선작들은 새해 첫 지면과 동아닷컴 신춘문예 사이트(www.donga.com/docs/sinchoon)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뗀 이들은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을까.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조이스는 팬이 자기 손에 키스하지 못하게 만류하며 ‘그 손으로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어요. 저 역시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하며 다가올 모든 일에 임할 겁니다.”(최인호 씨)
“내 새끼뿐 아니라 더 많은 아이의 감수성을 두드리는 동화를 쓰고 싶어요.”(민경혜 씨)
“함부로 전제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지닌 작가가 되겠습니다.”(성해나 씨)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