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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온 민족이 함께한 3·1운동, 지금 더욱 절실한 3·1정신

입력 | 2019-01-02 00:00:00


1919년 한반도와 대한(大韓) 동포가 사는 세계 곳곳의 하늘에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33인의 민족대표가 3·1 독립선언을 한 것이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전국으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은 세계사를 통틀어 봐도 단일 운동으로선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숨진 사람만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투옥된 사람은 4만7000여 명이라고 조선총독부는 기록했다.

100년 전 선조들이 일제의 불의와 폭력에 맞서 일으킨 3·1운동에는 종교와 계층, 성별에 관계없이 전 민족이 참가했다. 시위자 수를 줄였을 수 있는 총독부 기록으로도 전체 인구 1679만 명 중 참여자가 106만 명에 달했다. 서울에서 시작해 지방으로 확산됐고, 지식인·학생이 중심이 됐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민족 전체가 주역인 운동이었다. 지역에 따라 운동 양상도 횃불투쟁, 만세시위, 격문 배포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됐다.

3·1운동으로 분출된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왕정과 식민지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함께 민주공화정을 국체(國體)로 선언한 것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임시정부의 탄생이라는 정치적 결과 외에도 민족적 각성은 동아일보와 같은 민족 언론이 탄생하고 민족 사학, 민족 종교가 내실을 기하는 계기가 됐다. 헌법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출발이라고 선언한 이유다.

3·1운동은 인간 기본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줬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1966년 유엔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보다 47년 앞서 민족이 독립된 국가를 가질 권리가 기본적 권리라고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3·1운동이 국제적 불의나 부당한 일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보편적 인류애를 강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은 후손된 도리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동아일보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2월 하순에 공동 주최한다. 동아일보가 간행을 주도한 3·1운동 50주년 기념논문집은 사학계에서 아직도 기념비적 연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3·1운동 10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전국의 총 시위 건수 등 기초 사실이나 통계조차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아쉽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3·1운동 후 지난 100년의 끝자락을 보낸 우리 사회는 이념과 계층, 세대 간 심각한 균열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쪼개진 대한민국으로는 안팎에서 밀려오는 안보와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청년세대들이 역사에서 길을 발견하고 공동체의 삶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3·1운동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거족적인 참여로 불가능에 도전한 선조들의 3·1정신을 되새기며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