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임세원 교수 추모 물결 한국형 자살예방프로그램 개발… 20년간 환자 감사편지 상자 가득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지난해 12월 31일 진료 도중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는 보름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이 글에는 평소 환자들을 위했던 임 교수의 따뜻한 진심이 잘 녹아 있다. 평소 그를 지켜본 동료 의료진은 임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 교수는 1996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를 거쳐 2006년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후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뛰어들었다. 임 교수가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에 남긴 다른 글에는 그 계기가 적혀 있다. 전공의 시절 우울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한 노인 환자가 퇴원한 지 며칠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렇게 (환자 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둔한 의사가 무슨 쓸모가 있나”라며 자책하다가 주변 사람의 자살 징후를 일찍 알아챌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그 고민의 결정판이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였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자살 예방 자원봉사자의 정식 교재로 쓰고 있다.
임 교수 본인도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2012년 허리 디스크로 생긴 통증이 낫지 않자 이듬해 어느 날 새벽에 차를 몰고 나가 난간을 들이받으려고 마음먹었던 것. 하지만 집에서 차 열쇠를 찾다가 잠든 가족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민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