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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70〉밥 한 그릇

입력 | 2019-01-02 03:00:00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일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가 주는 한 그릇의 밥이 경우에 따라서는 허기만이 아니라 외로움까지 달래주고, 세월이 흐른 후에는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김지하 시인의 ‘손님’은 그 소중한 기억에 관한 시다.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몹시 외롭다. 먼 길을 온 탓인지 배까지 고프다. 배가 고프니 더 외로운 것인지 모른다. 그때 전봇대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누군가가 앞에 나타난다. “전봇대 위에 까치 울고/문득 앞에 와 서던/키 큰 당신.” 그 사람을 만나고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른다. 그러자니 이유도 모르면서 자신이 풋풋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 사람이 내어준 따뜻한 밥을 먹자 외로움과 시장기가 사라진다. “기억한다/그때/나 몹시도/외롭고 시장했던 것/밥 한 그릇/당신.” 이토록 따뜻한 밥, 따뜻한 기억이 또 있을까.

시인은 밥 한 그릇에 외로움과 시장기를 해소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환대와 그것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큰 위로와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 뭉클하게 보여준다. 화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시장기는 은유적인 의미에서 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내면의 갈증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외롭고 배고픈 존재이고, 그래서 누군가의 환대를 필요로 하는 손님인지 모른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힘의 원천이듯, 누군가의 환대를 받은 사람은 스스로도 때가 되면 누군가를 손님으로 맞아 환대를 베풀게 된다. 그리고 그 손님은 다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챙겨주는 ‘당신’이 되어 누군가의 허기와 외로움, 내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소소한 밥이 아니라 삶의 삭막함과 비정함을 걷어낼 만큼 고귀한 성찬이 된다. 밥 한 그릇, 당신.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