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언제든 미국 대통령과 만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그런데 북한의 신년사를 30년 넘게 공부해 왔던 내 시각에서 볼 때, 이건 많은 품을 들여 분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북한 신년사야 과장되고 거창한 문장과 추상적인 목표 제시로 가득 차 있는 것이고, 그해 말에 돌아보면 역시 말뿐이었음을 새삼 알 수 있다. 오히려 신년사와 그해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랫동안 북한 신년사를 지켜봤던 경험으로 볼 때 굳이 이걸 분석하려면 쭉 훑어 내려가다 ‘이건 북한에서 김정은만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몇 문장만 추려내면 된다. 그런 문장들은 아래에서 써서 올린 신년사를 읽어보다 김정은이 직접 추가해 넣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올해 신년사는 그 어느 때보다 김정은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쭉 보다 보니 결론적으로 올해 신년사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잔뜩 실린 것이 느껴진다.
사실 전문가들은 작년 신년사가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됐다고 분석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김정은은 당장 몇 달 뒤부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다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해 신년사에선 “남조선에서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만 언급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북-미 관계는 예측하지 못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며, 즉시적인 핵 반격 작전 태세를 항상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말은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김정은이 직접 한 말도 지켜지지 않는 판에, 이번 신년사를 놓고 또 올해 상황이 어떨 것이라느니 하는 분석들도 별로 기대할 것은 못 된다.
올해 신년사에선 오히려 작년보다 건질 말이 없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미 관계가 진전되고, 제재가 풀리지 않고선 이뤄질 수 없다는 것쯤은 김정은도 알 것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던진 말이라고 보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마주 앉으면 많이 양보하겠지만,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약속을 깨겠다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나는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의 고심을 보았다. 직접 추가해 넣은 문장마다 나가자니 자기 뜻만으로는 되지 않고, 돌아가자니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말로 한계가 있으니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북한 사상 처음으로 집무실 소파에 앉아 발표한 모습은 큰 파격도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드러냈다. 올해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는 지금 신년사만 봐선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김정은은 지난해 보인 모습보다 올해 더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할 결의가 서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올해 역시 남북 관계는 긍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된다.
다만 현재 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 있다. 전진 패스를 할지, 뒤로 돌릴지, 아니면 슛을 할지는 그가 결심해야 한다. 천성적인 승부사 트럼프 대통령이 골 욕심을 내길 기대한다. 물론 그가 슛을 해도 골이 될지 헛발질이 될지 역시 지금은 알 수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