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살다 보면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의도와 주변에서 발생하는 우연이 번갈아 나타나기도 하고, 동시에 나타나 충돌하며 혼란을 주기도 한다. 지난해 한 학기 동안 20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이들의 고민을 접하면서 어쩌면 직장인들과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 앞으로 뭐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직장인이 부러울 수 있겠지만, 직장인 중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자기가 평생 하고 싶은 것인지,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지난해 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6년째 연말마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매번 다른 울림을 준다. 이번에는 ‘의도적 전략’과 ‘창발적 전략’이 어떻게 기업과 개인의 삶에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도적 전략이란 자신이 예상하는 어떤 기회를 추구하는 것이며, 창발적 전략은 예상치 못한 기회로 인해 자신의 전략을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연말에 대만을 여행하면서 내가 초급 직원이었을 때 아태지역 사장이었고, 지금은 멘토이자 친구처럼 지내는 예전 직장 상사와 그 가족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한 글로벌 기업 고객을 위한 공동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싱가포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 시간이 한참 남아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컨설팅에서 코칭으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그에게 여러 질문을 했고, 그는 중요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코칭 분야에 매력을 느낄 뿐 아니라 사업 아이템으로도 괜찮겠다는 어느 정도 확신이 들자 컨설팅 회사를 나와 독립 코칭 회사를 설립했다. 우연한 관심과 기회에서 시작했던 코칭은 어느새 창발적 전략에서 의도적 전략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연이 새로운 의도로 변화한 것이다. 직장인들 역시 자신이 왜 현재의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면 적지 않은 우연이 작용했을 것이고, 지금은 그 우연의 시작이 의도적 노력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크리스텐슨은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실험을 주저하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물론 이러한 실험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것이 직장인의 유일한 실험은 아니다. 그것은 직장 내에서 해보지 않던 프로젝트에 자원을 하거나, 독서 모임에 나가거나 사보에 글을 써보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을 내어 봉사 활동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블로그를 시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가끔씩 기사로만 접하던 어떤 행사나 콘퍼런스에 직접 참여해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직장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왠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의심이 드는 직장인일수록 이런 실험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직장을 떠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게 되면 이런 실험은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 올 한 해에 우리의 삶에 흥미로운 우연이 생겨나길, 이 우연을 놓치지 말고 의미 있는 실험으로 연결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든,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결과를 발견하든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