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은 시행착오 축적 결과, 정책 수립도 실험과 진화가 필요” ‘별종’ 혁신가들 마음껏 기 펴려면 기업환경 개선·사회안전망 확충해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그의 이야기는 곧이어 사회정책을 만드는 문제로 옮겨간다. 변수가 10개만 돼도 교과서의 논리에 의거하여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진대, 얽히고설킨 사회문제에 대해 단편적인 논리와 맹목적인 신념에 근거해 경직적으로 답을 강요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복잡한 정책문제일수록 전능한 신의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실험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개선해 나가는 진화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인류문명의 놀라운 발전 과정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에서 조금씩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 경험을 미래지향적으로 반추하면서 한 걸음씩 진전해온 결과물이다. 이 시행착오 축적의 양과 속도가 곧 그 사회의 발전 정도를 결정한다. 점진적인 탐색과 누적적인 개선 과정에 대한 믿음은 정해진 답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열린 자세이며 진보적인 생각이다. 한 사람의 탁월한 지혜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여러 실험의 결과 다양성이 보존되기 때문에 외부 충격이 와도 갑자기 주저앉는 일이 없다. 또 급작스러운 위기 이후에도 곧 살아나는 복원력이 있다.
별종 취급을 받더라도 색다른 아이디어를 들고, 끊임없이 실험하며,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수많은 혁신가가 산업혁신 생태계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이런 혁신가가 마음껏 기를 펴는 혁신국가에서 국가가 할 일은 창조적 파괴의 앞단과 뒷단을 챙기는 일이다. 첫째, 무엇보다 끊임없이 혁신적 아이디어가 실험될 수 있도록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이 쳐놓은 거미줄 같은 제도적 장벽을 획기적으로 걷어내서 신산업에 대한 도전적 투자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시행착오에 수반된 실패 위험을 경감시켜 주는 제도적 기반과, 물리적 인프라를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둘째, 혁신은 필연적으로 기존 이해관계망의 파괴를 수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보듬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과 평생교육의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혁신으로 인한 상시적 구조조정의 시대에 복지와 교육으로 대표되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혁신을 뒷받침하는 최고의 준비로 불리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혁신국가의 모습에서 한참 멀다. 최근 차량공유 앱의 새로운 실험이 결국 좌절 단계에 있다. 일단 시도해 볼 수 없으니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그 문제를 또 다른 혁신적 아이디어로 해결 가능한지 탐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사안에서 소통하고 설득하며 타협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정치일 텐데, 혁신의 관점에서만 보면 현재 한국은 정치 실종 상태다. 이 공유 비즈니스 모델의 실험을 위해 많은 청년이 밤낮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혹여 그들 마음에 대한민국은 도전적 시도가 아예 원천 봉쇄된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의 생채기가 생길까 걱정이다.
2019년이 밝았다. 올해는 모든 사람이 혁신가로서 자신만의 비전과 아이디어로 신나게 도전하는 ‘혁신국가 대한민국’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