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교수, 2009년 이어 심환지에 보낸 밀찰 9통 추가 확인
1799년 11월 26일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믿을 만한 특정 인물을 ‘팽례’라는 편지 전달자로 지정했다”며 “하위 관료들이 주로 맡았는데 이 편지의 팽례였던 이종채는 훗날 수문장까지 오르는 등 신임이 각별했다”고 말했다. 안대회 교수 제공
정조의 밀찰을 소장 중이던 심환지의 후손 청송 심씨 문중에서 최근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게 편지 분석을 의뢰해 존재가 알려졌다. 안 교수는 정조의 비밀편지를 분석한 논문 ‘정조대 군신의 비밀편지 교환과 기밀의 정치운영’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학술지 ‘정신문화연구’에 실을 예정이다.
○ 밀찰 보안에 극도로 예민했던 정조
1799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호론의 지도자였던 한원진(1682∼1751)을 이조판서로 추증(追贈·사후에 직급을 높임)하는 안건으로 호론과 낙론이 팽팽한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정조는 낙론을 이끌던 김조순(1765∼1832)을 통해 반대 여론을 가라앉히는 등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스물네 살의 신진 관료였던 김매순이 상소문을 써 낙론의 반발 심리를 부추기자 이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만난 안대회 교수는 “정조는 집권 초기였던 1780년대 영의정 김익(1723∼1790)에게도 밀찰을 보내는 등 집권 내내 이를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밀찰의 성격상 정조는 보안을 극도로 중시했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겸종(겸從·잡일을 하거나 시중 드는 사람) 가운데 잡류가 많다고 들었으니 솎아낼 방도를 생각해 더욱 치밀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 만기친람형 정조의 통치술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밀찰과 함께 이번에 새롭게 연구된 박종악(1735∼1795)이 정조에게 보낸 비밀편지 내용의 일부다. 노론 출신으로 1792년 우의정을 지낸 박종악이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한 인사정보를 보고한 것이다. 당시에 고위관료로 진출하는 발판인 홍문관 관원의 선정 문제로 노론과 남인, 소론 계열 간에 팽팽한 기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는 이 같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인 계열인 정약용을 홍문관에 등용시켜 이후 정국을 급속히 냉랭하게 만들었다.
안 교수는 “신진 관료에 대한 인사 추천권은 국왕이 아닌 관료들의 협의로 진행한다는 법적 절차가 있었지만 정조는 소소한 국정에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다”며 “정조의 밀찰은 노련하게 책략을 구사한 소통 방법이었지만 과도한 비밀주의에 의존한 정치 형태라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 역시 크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