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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려워도 유성오일장엔 손님들로 넘쳐나유∼”

입력 | 2019-01-04 03:00:00

대전 유성구 오일장 르포




100년 역사를 지닌 유성오일장은 중부권 최대 규모로 장이 서는 날짜 끝자리 4, 9일에는 2만 명 이상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지난해 12월 29일 대전 유성구 장대동 농협 유성지점 뒷골목. 영하의 날씨지만 유성오일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 길바닥에는 충남 공주와 논산, 세종, 충북 옥천, 영동 등지에서 온 촌부들이 밤, 곶감, 고구마, 연근, 시금치 등 농산물 좌판을 벌였다. 다른 골목에는 생선을 비롯해 생활용품이 종류별로 난전을 형성했다.

유성오일장의 명물인 잔치국수와 보리밥집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유성오일장이 서는 날만큼은 그런 걸 못 느껴요.” 날짜 끝자리가 4, 9인 날에는 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00년 공동체’ 무너지나

100년 역사를 지닌 유성오일장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이 일대 장대B지구 33만8000m²(약 10만 평)가 재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 시장 안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거주자와 점포를 소유한 외지인 중심으로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반대하는 측은 이곳에서 대대로 점포나 좌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들이다.

2일 다시 찾은 시장 골목. 거리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장대B구역재개발해체주민위원회(해체주민위)가 내건 현수막과 찬성하는 재개발추진위원회(추진위)가 내건 현수막이 뒤엉켜 있었다. 100여 년간 오일장을 중심으로 유지돼 온 공동체에 균열이 가는 징후처럼 보였다.

해체주민위 양충규 사무국장은 “재개발이 이뤄지면 300여 영세 점포주와 인근 지역에서 오일장을 찾는 1200여 노점상의 생존권이 박탈된다. 유성오일장은 단순히 재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오래된 미래’”라고 주장했다.

대전 유성구 장대동 장대B지구 재개발사업지구에 재개발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과 이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뒤엉켜 걸려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양 사무국장은 “유성오일장은 장날이면 전국에서 2만 명이 찾는 손꼽히는 명물로 대전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매달 두세 차례 이곳을 찾는다는 조모 씨(51·여·대전 서구 월평동)는 “유성오일장은 힐링 장소이자 교육 공간이기도 하다”며 “시장이 없어진다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쇼핑센터만 혜택을 보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추진위 측은 “주민 75%가 참여해 재개발요건이 성립됐다. 노후한 장대지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재개발은 불가피하다”며 “신속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할 것이고 유성오일장은 재개발 후 조성되는 공원녹지에 다시 열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불씨가 된 유성구청장 ‘기정사실화’ 발언


이처럼 주민 간의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문제의 열쇠를 쥔 대전시와 유성구는 어정쩡한 태도로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최근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재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으로 반대 측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정 청장은 2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장대B구역이 이미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고 유성복합터미널이 내년 11월 완공되는 등의 여건을 고려할 때 재개발사업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유성오일장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청장의 발언은 재개발은 추진하되 오일장은 공원 부지로 옮기면 된다는 추진위 입장을 대변하는 듯해 논란이 일었다. 해체주민위 측은 정 청장의 발언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시장 상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들은 유성오일장에서 진행하던 ‘재개발 반대 서명운동’을 대전시 전역에서 펼칠 계획이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