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6학년 교과서 검정전환
진보교육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핵심 사안이다. 진보진영은 “국가 주도의 교과서 발행·심사는 더 이상 시대와 맞지 않는다”며 “빠른 사회 변화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교과서 제작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검정 교과서의 좌 편향성을 문제 삼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교과서 검정 영향력을 줄이라’, ‘초등 사회 교과서도 검정화하라’는 진보 측 요구가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반영해 국정과제로 점진적 교과서 자율발행제 도입을 내걸고 ‘교과서의 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과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심사진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20년 학교에 배포될 새로운 중3 검정 교과서를 심의 중”이라며 “출판사나 집필진의 부담은 줄었는데 심사 쪽에서는 기존과 다른 시행계획이 내려와 당혹해 했다”고 말했다.
과거 심사 경험이 있는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정치적 가치가 충돌하는 사회과 과목은 물론이고 수학이나 과학처럼 오류 없는 지식 전달이 중요한 과목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집필진에게 자유를 보장한다며 정부가 교육적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과학계 인사는 “진화론과 창조론이 있는데 창조론자들이 창조론 위주로 교과서를 집필하고 맞다고 생각하면 한쪽으로 치우친 교과서가 그냥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 검정 ‘다양성’ vs 국정 ‘안정성’
초등 3∼6학년의 사회, 수학, 과학 교과서를 검정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교육계 의견이 엇갈린다. 검정 교과서 확대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단일한 국정 교과서에 비해 여러 출판사가 펴내는 검정 교과서가 질적으로 우수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정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A 교수는 “교사들의 역량이 제각각인 현실에서 국정 교과서마저 없으면 수업 내용이 천차만별일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에서도 이로 인해 교육격차 등 부작용이 나타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집필진은 “초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은 핵심 개념 위주인데 검정 교과서가 여러 종 나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차라리 국정 교과서를 핵심 개념 위주로 가볍게 만들고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교수 자료를 풍부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초등교육 정치색 갈등 우려
무엇보다 교육계에서는 초등 교과서의 검정화 과정에서 초등교육마저 정치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출판사별 정치적 색채나 학습량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과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사회 과목에는 중고교의 역사 과목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 과정처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자유) 민주주의’ ‘6·25 남침’ 등 미세한 단어 하나하나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
임우선 imsun@donga.com·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