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루시 휴스핼릿 지음·장문석 옮김/932쪽·4만2000원·글항아리
지난해 11월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 단상에 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세계에 번지는 민족주의와 파시즘을 경고했다. 전 세계 85개국 지도자가 참여한 이 자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참석했다. 마크롱의 연설을 중계하던 카메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을 번갈아 비췄다.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세계가 마주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길 잃은 경제는 끝없는 불황을 예고하고, 극우파 정당의 부상은 극심한 충돌의 전조 같다. 100년 전 세계가 겪은 고통과 환멸을 기억하고, 냉정하게 그 원인을 따져야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단눈치오의 기록을 모아 새로운 서사를 창조한다. 수십 년을 오가며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인물의 여러 단면은 그가 단순한 악인이 아닌 치명적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지금도 누구나 그 덫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단눈치오가 선동가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 파시즘은 예외적인 광기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니체, 바그너 등 유럽의 지적·사회적 삶에 뿌리내린 경향에 대한 겹겹이 쌓인 오독이 유기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임을 깨닫게 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