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정 경제부장
중국 정부가 100년이라는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론하는 건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라서 장기 국가계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정치국 상무위원이 갑자기 행방불명됐다가 뒤늦게 재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가와 정권을 구별한다. 과거 정권의 성취는 국가에 남아 있고 새 정권은 그 유산 위에서 유훈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정권 교체가 권력 간 이동이라기보다 전임 권력의 배에서 후임 권력이 잉태돼 출산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한국 담당자들을 만났다. 여러 주제가 오갔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그들의 결론은 “한국 정부의 방향을 모르겠다”였다. 우리가 전술적 모호함을 택해서가 아니라 상당수 정책이 그들의 기준으로는 조변석개한다는 평가였다.
지난해 처리한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를 보자. 자영업자들이 카드 수수료를 깎아 달라고 요구한 근본 원인은 동네 떡볶이집에서도 카드를 받아야 해서다. 한국의 카드 결제 비중은 전체 소비의 80%에 이른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계 자영업자들은 매출의 2%대인 카드 수수료도 버겁다. 최저임금 이슈가 부담스러웠던 정부와 여당은 화끈하게 수수료를 낮췄다. 그 부담은 민간 기업인 카드사가 지게 됐다.
사실 신용카드 문화는 아주 세련되고 장기적인 정책 접근의 결과다. 카드를 많이 쓰면 연말에 소득공제를 해주는 제도가 도입된 게 1999년이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였다. 자영업자의 과표를 양성화해 세금을 더 걷겠다는 취지였다. 세원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소비 방식 변화를 유도해냈다.
수수료 문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정책의 소비자 수용성이 워낙 좋다 보니 생긴 결과다. 그렇다면 해법도 카드 사용의 접근성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소득공제 대상에서 매출액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업장에서 결제한 내역을 제외해 소비자들이 카드 결제로 얻는 이익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카드 결제를 거부할 권리를 특정 사업장에 주는 방안도 논의할 만하다. 물론 이런 식의 대안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기도 없다. 즉각 체감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종 보완 방안이 추가돼야 해서다. 그럼에도 정권을 넘어 길게 보고 멀리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쟁 상대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