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홈런 타자 중 한 명인 최정을 친형으로 둔 것은 축복이자 부담이다. 하지만 최항(사진)은 그 무거운 중압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홈런’ 하면 최정이 떠오르는 것처럼 ‘끈질김’ 하면 자신을 떠오르게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올 시즌을 준비 중이다. 스포츠동아DB
SK 와이번스 최항(24)은 독립심이 강하다. 모든 기준을 온전히 자신에게 맞춰두고, 제 힘으로 척척 길을 열어나간다.
데뷔 2년차 시즌이었던 2018년에도 최항은 스스로 빛났다. 개막 직후부터 단 한번도 1군 엔트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생애 첫 가을 무대까지 마음껏 즐겼다. 키움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서는 2사 만루서 6-3으로 승부를 뒤집는 역전 싹쓸이 2루타를 때린 뒤 유니폼 앞면에 새겨진 로고를 치켜세우는 세리머니로 팀과 팬들을 향한 자부심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최정의 동생’이 아닌, 오직 최항으로서의 존재감을 밝힌 순간이다.
스스로는 “운이 많이 따랐다”고 돌아보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회를 붙잡는 것 역시 준비된 자의 특권이다. 2012년 입단 후 2군에 머물면서 작은 것부터 꾸준히 성공 경험을 쌓았다. 최근 만난 최항은 “현실의 벽을 많이 느꼈다. ‘프로는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며 “ 공익근무를 마치고선 나 자신만을 위해 야구를 했다. 1군에 올라가지 못해도 후회 없이,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런 동생을 두고 같은 팀에 소속된 친형 최정은 “항이가 나보다 마인드가 훨씬 좋다”며 내심 기특한 미소를 짓는다.
대타 혹은 대수비 등 작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형과 함께 그라운드를 지키는 날도 늘었다. “형과 함께 경기에 나가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는 그에겐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최종 6차전서 최정이 때린 4-4 동점 홈런이 2018시즌 최고의 장면이다. 최항은 “정말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형은 중요할 때 정말 잘한다”며 “그만큼 믿음직하고,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선수다”고 했다. 이어 “나는 형처럼 홈런을 많이 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다른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집요하게 출루를 하거나 뜬금없이 장타를 생산하는, 끈질긴 선수이고 싶다”고 소망했다.
SK 최항(오른쪽). 스포츠동아DB
최항은 5일 오키나와로 개인 훈련을 떠났다. 스프링캠프에 앞서 최정, 한동민, 김성현과 함께 몸을 만든다. 근력 운동과 더불어 타격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최항은 “지난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염경엽 감독님께서 ‘너는 더 잘 할 수 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며 “형도 나도 변화를 원한다. 기술적으로 많은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타격면에서 약점을 보완하고, 정교함이 들어간 기술을 갖춰 돌아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팀에서 계속 무언가를 이뤄내면서 은퇴까지 하는 건 더욱 멋있다. 나도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최항이지만 멀리 보지는 않을 생각임을 내비쳤다.
“아직 내 역할은 경기 중반에 나가 팀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하는 역할이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곳에서부터 다시 이겨나가면 나의 역할도 더 커질 수 있다. 계속해 주어진 것을 완벽하게 해 내겠다.”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다짐하는 최항의 2019시즌이 주목된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