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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값이 방아쇠 당긴 反정부시위… 수단 30년 독재 무너지나

입력 | 2019-01-07 03:00:00

철권통치 바시르 정권 최대 위기
작년 물가 70% 상승… 빵값 3배 폭등, “독재가 나라 망쳐”… 수단 전역 확산
정부, 국가비상사태 선포 강경진압
야당 인사-언론인 체포… SNS 차단, 앰네스티 “시위사망자 40여명 달해”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9일 수단 수도 하르툼 북부 지역 마을을 방문한 모습. 하르툼=AP 뉴시스

‘빵 가격 인상’으로 촉발된 아프리카 수단의 민생고 시위가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1년 중동·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을 굳건히 견뎌냈던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철권통치가 존폐 위기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30년째 독재를 이어오고 있다.

수도 하르툼에서 약 400km 떨어진 북동부 도시 아트라바. 지난해 12월 19일 이곳에서 시작된 ‘민생고 시위’는 약 2주일 만에 바시르 대통령의 고향인 호시바나가를 포함해 수단 전역으로 번졌다. “빵을 달라”며 거리를 메우던 시위자들은 이제 “자유와 평화, 정의를 달라”며 바시르 대통령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바시르 대통령이 나라를 망쳤다. 그가 있는 수단에선 내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시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빵 가격’이었다. 수단 정부는 지난해 말에 밀, 연료 등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작은 빵 한 덩어리의 가격은 1SDP(수단파운드·약 23원)에서 3SDP로 무려 3배로 올랐다. 지난해 수단의 물가상승률은 70% 안팎이었다. 밀가루와 육류, 채소류 등이 이미 50% 넘게 오른 상태에서 주식인 빵 가격마저 3배로 오르자 수단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수단 경제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석유 60억 배럴이 묻혀 있는 산유국이지만 유전지대 대부분을 보유한 남수단이 2011년 독립하면서 국고의 75%가 날아갔다. 외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려 해도 남북 수단 경계의 유전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 다르푸르 등에서 벌어진 반군과의 무력 분쟁 등이 발목을 잡았다. 바시르 정권이 경제 붕괴를 방관한 채 국방비 증강에만 예산을 집중하는 동안 빵집과 주유소마다 정부 보급품을 얻으려는 인파 행렬은 더 길어지기만 했다.

바시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의 확산에 놀란 수단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가 시작된 아트라바를 비롯해 주요 도시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야당 인사들과 언론인,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했고,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페이스북, 와츠앱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도 차단했다. 교사의 시위 가담에 상당수 학교의 문도 닫았다.

이 같은 강경 진압에도 시위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3일 수단 정부는 급기야 기초식품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임금을 인상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시위가 빵 가격 인상 등에 대한 불만으로 촉발된 만큼 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면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시위의 촉매제가 빵이었지만 30년째 이어진 바시르 정권의 정치적 태만과 부패, 억압 등으로 쌓여온 분노가 폭발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2013년 9월, 지난해 1월 등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 때마다 바시르 정권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낼 정도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번 반정부 시위가 30년 바시르 철권통치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수단 정부는 정부군 2명을 포함해 이번 반정부 시위로 총 19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 등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4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