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문화부 기자
상하이는 발 닿는 곳마다 독립운동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흔히 ‘상하이 청사’라고 부르는 임정 마당로(馬當路) 청사(1926∼1932년 사용)는 1993년 복구해 문을 연 지 25년이 넘었다. 지금도 한국인들의 발길이 끊일 새가 없었다. 현장에서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 건물과 장소는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없기도 했다. 1921년 임정 신년축하식 기념촬영 장소(영안백화점 옥상)는 벽돌 하나 달라진 게 없었지만, 1920년 신년축하회가 열렸던 ‘일품향여사(一品香旅社)’는 진즉에 헐리고 ‘래플스 시티’라는 복합쇼핑몰이 들어서 있었다.
막상 현장에 가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면 당대 독립운동가들의 결기를 떠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자 하는 사람조차 어디가 어딘지 찾기 어렵다는 것은 문제다.
일부 장소의 위치가 최근에 드러나기도 했지만, 임정 수립 100년이 지나도록 역사적 장소에 표석 하나 없다고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한중 관계는 수교 뒤에도 여러 정세에 따라 좋다 나쁘다 했다. 남의 나라 땅에 기념물이나 표석을 세우는 게 쉬울 리 없다.
대신 우리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 있다. 해외 독립운동 역사 유적의 당대 모습을 역사 지도와 함께 증강현실(AR)로 제작해 교육에 활용하는 것이다. 상하이 여행자가 스마트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켜고 이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표석이 없어도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얼마나 역사적인 장소인지 쉽게 알 수 있을 테니 얼마나 근사할까. 가상현실(VR) 콘텐츠도 좋다.
고려 말 문인 길재(吉再·1353∼1419)는 “산천은 의구(依舊·옛날 그대로 변함없음)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고”라고 읊었다. 하지만 근대 도시는 순식간에 변하기에 10년만 지나도 모습이 의구하지 않다. 대신 오늘날은 옛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3·1운동 및 임정 100주년 디지털 기념사업에 정부가 나서는 건 어떤가.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