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앞둔 다문화가정, 양육권 전쟁에 멍드는 아이들
외국인 부인이 자녀를 데리고 귀국해 버리면 한국인 남편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자녀를 찾을 길이 막막한 게 현실이다. 이런 경우 일부 한국인 남편은 베트남 등의 처갓집에 직접 찾아가거나 브로커를 동원해 사실상 아이를 납치해 오는 경우도 있다.
○ “한국서 이혼소송하면 아이 뺏겨요”
이렇게 한국에서 결혼한 외국인과 한국인 배우자의 양육권 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깝다. 법원은 양육자를 결정할 때 경제력이나 양육을 도울 가족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은 자녀와의 애착관계, 자신이 양육해야 하는 이유를 재판부에 충분히 설명하기도 어렵다.
가사전문법관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한국인 남편에게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전력 등 명백한 결함이 없는 한 결혼이주 여성이 양육권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주민단체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결혼 이주여성이 아이를 고국에 데려가 키우겠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할 수 있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납치 말고 답 없는 게 현실”
외국인 아내가 자녀를 데리고 귀국해 버린 한국인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다. 심영수 씨(49)는 2016년 이혼소송을 통해 양육권을 갖게 됐지만 베트남에 있는 딸(6)을 4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심 씨는 딸을 찾기 위한 소송에서 이겼지만 베트남에서 이를 집행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심 씨는 딸을 강제로 데려간 혐의(국외이송약취)로 아내를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강제로 데려간 증거를 찾기 어렵다며 불기소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남편이나 부인이 자녀를 협약 미가입국에 데려가면 상대 배우자는 아이를 몰래 데려오는 방법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모 씨(49)는 2014년 베트남 국적 아내가 아들(당시 4세)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도망가자 처가를 찾아가 돈을 건네며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사정했다. 그리고 새벽에 장모가 시장에 간 틈을 타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육권을 놓고 다투는 부모 중 한쪽이 아이를 일방적으로 해외에 데려가지 못하도록 법원의 출국금지명령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뉴질랜드와 호주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조영관 변호사는 “이주 여성들이 이혼 후에도 국내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자녀를 무단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엄마 따라간 절반이 ‘그림자 아이들’ ▼
여권 갱신 못해 베트남 불법체류… 청강생으로 학교 다녀 졸업장 없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인 지연이(가명·10)는 2010년 엄마의 나라 베트남에 갔는데 현재 불법 체류자다. 지연이가 베트남 국적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베트남에 5년 이상 거주하고 18세가 됐을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외국인 신분으로 정기적으로 여권을 갱신해야 한다.
2014년 여권 유효기간이 만료된 지연이는 불법 체류를 끝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2010년 한국을 떠나온 뒤 한국인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엄마가 베트남 법원에 이혼 소장을 냈지만 아버지는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공동친권자인 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여권을 재발급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아예 호적을 옮기는 편법을 써서 베트남 국적을 얻기도 한다. 베트남 껀터시에 사는 윤아(가명·12)는 학교에선 엄마를 이모라고 부른다. 2009년 엄마는 두 살배기 윤아를 베트남에 데리고 간 뒤 외삼촌 자녀로 호적에 올렸다. 이 호적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 다니던 엄마는 브로커에게 두 달 치 월급을 줬다.
한국 국적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도 정식 학생이 아닌 청강생으로만 수업을 듣는 사례도 있다. 청강생은 학교생활기록부가 남지 않고 졸업장도 못 받아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 베트남 현지에서 이주여성을 돕는 시민단체 ‘코쿤껀터’의 이유미 자문관은 “껀터시에 사는 아동들은 지난해 말부터 인민위원회 지침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다른 지역도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김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