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부의 청년일자리 지원금도 크게 늘었다. 대표 사업인 ‘청년내일채움공제’만 봐도 지난 해 약 4000억 원을 썼으나 올해는 1조 원 정도로 늘린다고 한다. 청년이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하면 정부가 1인당 연간 650만 원(2년) 또는 800만 원(3년)을 지원해 만기가 되면 목돈을 타게 해준다는 것이다.
청년들로서는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처음 선택한 직장에서 2년 또는 3년을 근무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많은 청년들이 고민에 빠진다. 목돈이 끌리긴 하지만 한 중소기업에서 몇 년을 보내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과 사회초년생들을 만나보면 중소기업 선호도가 예전보다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고민은 한 마디로 ‘중소기업에 희망이 있느냐’다. 한 청년은 자신이 다닌 중소기업에 대해 “임금도 적은데 일하다 보면 어느 날 사장 아들이 나타나 말도 안 되는 지시와 갑질을 한다. 평생을 그런 사람 밑에서 보낼 생각을 하면 ‘이건 아니다’ 싶다”고 전했다.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퇴출됐어야 할 ‘좀비 기업’들이 많을수록 좋은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나빠진다. 새 기업이 진입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부실기업들의 상시적이고 원활한 구조조정이야말로 경제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된다. 주변의 좀비들만 정리돼도 경쟁력이 높아질 중소기업이 많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소기업에 뛰어든 청년들의 자구책은 활발한 구직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취업 후 1년 내 퇴사율이 30%가 넘는다. 다만 퇴사한 청년들 대다수는 임금이나 근무환경이 더 낫고 자기에게 더 잘 맞는 직장으로 옮겨간다. 이런 ‘자발적’ 유연성이 그나마 노동시장에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지금 정부 지원책은 세금을 투입해 첫 직장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있다. 경력 형성을 돕는다지만 당사자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노동 이동성이 큰 산업에 있을수록 혜택에서 배제된다. 빚이 많은 청년일수록 목돈 때문에 더 좋은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기업도 마음이 떠난 사람을 데리고 있는 건 부담스럽다. 노동시장 효율화는 요원하다.
그렇다고 청년일자리 지원을 줄이자는 건 아니다. 시장기능은 살리면서 ‘사람 중심’으로 하자는 것이다. 청년을 2~3년 한 곳에 묶어두지 말고 노동시장 안에서 활동하는 한 혜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보완해 만기 전에 다른 중소기업으로 자유로이 이직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또 2~3년 형 대신 1년 형 공제를 신설·적용하되 1년차, 2년차 말에 만기연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더 많은 청년들이 이 사업에 참여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1년 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열악한 직업훈련 체계를 보완하고 개인의 자율적 경력관리를 돕도록 이 제도를 발전시키면 ‘세금 먹튀’ 우려도 줄 것이다.
자발적 이직이 어려울수록 기업은 ‘갑’이 돼 임금삭감 등 꼼수를 쓰기 쉽다. 반대로 이직이 쉬우면 기업은 정부 덕에 확보한 우수인력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경영개선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발로 하는 투표(voting by foot)’, 즉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가는 적극적 의사표시를 용인하면 노동시장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좀비기업이 줄면 중소기업 이미지도 개선된다. 청년일자리 사업은 고용실적뿐 아니라 중소기업 지원, 구조조정, 노동시장 효율화 등이 모두 얽힌 사안이다. 다양한 목표들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길은 사람중심 지원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