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 가족들 학대 이유로 호주 망명 계획 경유지 태국 방콕서 억류 조치 돼 발목 “유엔난민기구 관계자 만나게 해 달라” 요구하며 호텔서 버티는 중
“저는 라하프입니다. (쿠웨이트행) 비행기는 이미 떠났고 저는 호텔에 있습니다. 제가 망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저를 보호해줄 나라가 필요합니다.”
가족의 학대를 피해 호주로 망명하려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10대 여성이 경유지인 태국 공항에서 억류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강제송환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7일(현지 시간) AFP 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호주에 입국해 망명을 신청하려던 18세 사우디 출신 여성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은 전날 저녁 경유지인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지만 이곳에 억류됐다. 알-쿠눈은 가족들과 쿠웨이트를 여행하다 가족들이 한눈을 판 사이 태국행 비행기를 탔고 이어 호주로 넘어가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었다.
공항에 억류된 채 가족들이 있는 쿠웨이트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알-쿠눈은 공항 내 호텔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트위터에 도움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당초 태국 당국은 7일 오후 알-쿠눈을 쿠웨이트행 비행기에 태울 계획이었지만 그는 유엔난민기구 관계자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호텔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알-쿠눈의 사연을 알게 된 트위터 이용자들은 ‘라하프를 구하라(#SaveRahaf)’, ‘라하프알쿠눈(#RahafAlQanun)’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게시물을 공유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알-쿠눈은 AFP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족들의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가족은 엄격해 여섯 달 동안 나를 방안에 가두고 머리카락을 잘랐다”면서 “사우디로 돌아가면 감옥에 갇힐 것이 확실하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알-쿠눈의 망명 계획에 도움을 주고 있던 호주에 사는 20세 사우디 출신 여성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더 이상 이슬람교를 믿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가족들의 폭력과 성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한 남성 친척은 살해 위협까지 했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아시아지국 부국장 필 로버트슨은 알-쿠눈에겐 호주행 비행기 티켓이 있었고, 태국에 입국할 의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태국 비자 소지 유무로 억류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알-쿠눈이 쿠웨이트행 비행기에 타지 않은 것은 ‘중요한 승리’”라며 “알-쿠눈은 정부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에게 망명이 필요한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