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은따(은근한 왕따)여서 소외되며 투명인간, 호구 취급받아요.”
초등학생 A양(12)은 지난해 9월 청소년 익명 고민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나쁜 기억 지우개’에 아무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적어 올렸다. 이 앱은 ‘고민은 나눌 때 지워진다’며 고민을 익명으로 나누며 치유하자는 취지라고 소개했다. A 양은 익명으로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유머가 없고 매력도 없어 정말 재미없는 애”라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2016년 만들어진 이 앱은 그동안 50만 번 넘게 다운로드 됐을 만큼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A 양을 비롯한 수많은 청소년들은 익명성을 믿고 털어놓은 고민이 어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앱을 만든 업체는 지난해 10월부터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데이터 오픈마켓인 데이터스토어에서 청소년들의 고민을 엑셀 파일 형태로 만들어 월 500만 원에 판매해왔다. 파일에는 9~24세 앱 이용자들의 고민 내용과 함께 글쓴이의 출생연도와 성별, 글을 쓸 당시의 위치정보(위도·경도)까지 담겼다. 위치 정보와 고민 내용을 조합하면 주변 사람들은 글쓴이를 특정할 수도 있을 만큼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앱을 사용했던 청소년들은 평소 말 못할 고민을 익명으로 털어놓고 함께 위로하자던 업체가 자신들의 고민 내용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데 대해 ‘나쁜 기억을 지워준다더니 평생 못 지울 나쁜 기억을 만들어줬다’며 반발했다. 이 앱은 ‘작성한 글은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지워지며 당신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정작 업체 데이터베이스(DB)에는 구체적 위치정보와 함께 글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업체 측은 5일 데이터 판매 글을 삭제하고 유튜브에 해명 영상을 올려 사과했다. 업체 측은 “무료로 운영되는 앱이고 수익이 크지 않아 운영비를 충당하려고 실명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지운 데이터 판매 글을 올렸다”며 “데이터가 한 건도 팔리지 않았기에 고민 내용이 유출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업체는 자살 등의 우려가 높은 청소년을 지역 청소년상담센터와 자동 연계시켜주기 위해 위치정보를 수집했지만 6일부터는 중단했다고 밝혔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