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다.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재판 개입 의혹 등을 조사받는 지경에 이른 것은 사법부로선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중 상고법원 도입을 밀어붙인 바 있다. 그 결과 사법부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수렁 속으로 빠뜨린 최고 책임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작년 6월 재판 개입 등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일제 강제징용 사건 재판 등에 개입한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은 예견됐던 일이다. 검찰은 실무책임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한 뒤 재판에 넘기면서 주요 혐의 대부분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한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아래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 대법원 소부(小部) 재판에 개입한 정황 등을 확보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제징용 상고심이 진행 중일 때 일본 전범기업 측 변호사와 만나 소부에 있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보내기로 약속한 정황, 그리고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 문건에 결재한 정황 등 양 전 대법원장이 연루된 각종 의혹은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6년간 한 나라의 사법부 수장을 지낸 사람에 대한 예우를 갖추면서 증거에 입각해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가려낼 필요가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를 사후 보고받은 것을 사전 지시한 것처럼 혐의를 부풀리거나 거듭된 소환 등 망신 주 기식 수사를 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