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국제부장
평양행을 앞둔 조성길 대사대리를 마지막으로 만난 안토니오 라치 전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이런 농담을 건넸다고 했다.
“네, 압니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2016년 말 한국에 입국한 직후 밝혔듯이,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인터넷 등으로 한국 소식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조성길도 망명을 결심한 순간부터는 친분이 있던 태 전 공사의 방송 출연, 저서 출판 등 행적에 큰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랬을 그가 한국 대신 미국행을 원한다는 대목에선 생각해봐야 할 일이 많아진다.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의 실상이 그에게 불안감을 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영방송인 KBS에선 ‘김정은 위인맞이 환영단장’의 찬양 인터뷰가 나오고, ‘백두칭송위원회’ 소속 대학생들이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연설대회를 여는 게 현실이다. 남북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지지한 것으로만 평가하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 그를 주저하게 한 것은 아닐까?
태 전 공사는 조성길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여서 ‘백두수호대’나 ‘태영호 체포결사’대 같은 극좌적인 조직들도 있지만 극소수”라며 “한반도의 평화통일,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조직들이 수십 개”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서울의 바뀐 기류를 두려워할 친구의 심정을 즉자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이탈리아 언론마저 “한국은 수십 년간 탈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망명지였으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기다리는 한국 정부가 북한 체제를 배신한 그를 환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고대하던 새해 벽두에 터진 북한 외교관 망명 타진 소식에 외교가에선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조성길이 제3국으로 도피했다가 이탈리아에 복귀했다는 둥 각종 미확인 첩보까지 쏟아지는 정보 전쟁도 치열하다. 그런데도 불필요한 국내 파트를 정리하고 해외 활동 등 본연의 업무를 다하겠다던 국정원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 중동지역에 부임한 한 국정원 직원이 “주 업무가 대북정보 수집에서 국익 사업 및 관련 정보 수집으로 변했다”고 얘기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디 특정 공관 한 곳에서만 이러고 있겠나.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