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담배는 살충제, 비만과 닮았다. 자식에게까지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과학저널 ‘플로스 원(PLoS ONE)’에 어머니가 임신하기 전 아버지가 담배를 피웠다면 아들의 정자 농도와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소식이 실렸다. 수정(受精) 중 아버지의 생식 세포가 분열 및 복제되면서 DNA를 손상시켜 낮은 질의 유전자를 전달했을 것으로 스웨덴 룬드대 연구진은 추정했다.
임신 전 아버지 흡연에만 집중하기 위해 흡연과 정액량, 전체 정자 수, 정자 농도, 정자의 형태와 운동성 간 상관관계를 보정했다. 또 연구 대상의 사회 경제적 지위까지 고려했다. 흡연자들은 주로 경제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는 가정이다. 이들 중 어머니의 혈청을 얻을 수 없거나 아버지의 흡연 정보가 부족한 210명을 제외하고, 총 104명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했다.
그 결과 흡연하는 아버지를 둔 자식은 정자 농도, 즉 1mL에 들어 있는 정자 수(3800만 개)는 흡연하지 않는 아버지를 둔 자식의 것(6400만 개) 대비 59% 수준에 불과했다. 전체 정자 수는 각각 8800만 개, 1억8000만 개로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생식세포는 평생 동안 분열한다. 생식세포는 화학물질에 민감하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전 세계 11억 명의 인구가 담배를 피운다. 매일 150억 개비의 담배가 팔린다. 1분마다 1000만 개비가 팔리는 셈이다. 흡연을 통해 약 4000가지 유해 및 발암물질이 발생한다. 여성들은 고소득층, 남성들은 중산층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경향이 있다.
최근 ‘후성유전학’에 공개된 논문을 보면 담배, 살충제, 비만과 더불어 마리화나 역시 정자의 질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자식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연구진은 아이를 갖기 최소 6개월 전에는 마리화나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성유전학은 ‘AGCT(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의 배열인 염기서열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의 조절인자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연구한다. 한마디로 DNA 시퀀싱(염기서열 분석)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습관 등으로 유전될 수 있는 형질을 연구한다.
하지만 아직 임상의 측면에서 담배나 마리화나의 흡연과 정자가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실험의 변수로 남성들의 음주나 식습관, 수면 등 다른 요소들이 개입했을 여지도 있다. 어머니 역시 임신 전에 담배를 피웠는지 아니면 간접흡연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는지 확실치 않다.
마리화나 정책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마초의 효능은 지난 20년 동안 크게 향상돼 가고 있다. 그 결과 THC 레벨이 1995년 4%대에서 2014년 12%대로 많이 바뀌었다. THC 대 칸나비디올(마리화나의 생리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 비율은 14 대 1에서 80 대 1의 비율로 늘어났다. 더욱 세진 것이다.
다만 담배나 마리화나가 정자에 영원히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정자가 몸속에서 성숙할 정도로 자라려면 70일 정도가 걸린다. 그 후에는 배출되거나 몸 안에서 죽는다. 즉, 담배나 마리화나를 끊으면 다시 건강한 정자가 생성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남성 흡연자들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2019년에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삼가면 좋겠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