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 사회부장
“우아함은 드러남의 순간이다. 현실이 당신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것이다. 장난이 아니라 완전히 발가벗는다. 사람이나 사건이 발가벗고, 우리의 인식을 가로막고 있던 오물이 떨어져 나간다.”
이런 우아한 폭로가 실제 있을까. 폭로의 진위가 드러날 때까지 패턴은 대개 이렇다. 우선 폭로의 의도가 도마에 오른다. 이어 폭로자의 전력 문제나 비위 의혹이 꼬리를 문다. 여기에 정치권이 끼어들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폭로 중 사실은 과장으로 매도되고, 허위는 증거로 각색되기 일쑤다. 이쯤 되면 폭로는 명예훼손이나 공무상 비밀누설 사건이 돼 검찰이나 경찰로 넘어간다. 정치권이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로 진위가 가려지는 게 아니다. 수년간 이어지는 재판이 끝나야 일단락된다. 그러고 나서도 수사나 판결이 의혹에 휩싸이면 재수사나 재심이 이어진다. 폭로자는 그 중간에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까지 가면 처음의 폭로는 간데없이 너덜너덜해진다. 우아함은커녕 초라함에 비참하기 십상이다.
신 전 사무관 폭로의 핵심은 2017년 말 청와대와 기재부가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가 많아 보이도록 적자국채 발행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차영환 전 대통령경제정책비서관이 직접 개입했다고 신 전 사무관은 주장했다. 그 정황 증거라며 기재부 전 차관보의 카카오톡 문자도 공개했다. 김 전 부총리와 차 전 비서관은 적자국채 발행 검토를 시인했다. 하지만 거시경제 운영 등 중장기 재정정책을 위해서였고, 결과적으로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부인하지만 정말 박근혜 정부에 채무 부담을 지우려는 의도가 추호도 없었을까. 폭로의 방점이 거기에 찍혔는데 그 실체는 뿌연 안갯속에 잠겨 있다. 어쩌면 수사를 거쳐 몇 년 후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안개는 안 걷힐지 모른다. 그래서인가. 신 전 사무관 자살 시도 직후 그의 대학 선후배들은 호소문을 통해 “내부 고발 과정과 의도가 선하다면 결과에 가혹한 책임을 묻지 않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또 그의 폭로를 ‘순수한 마음’과 ‘무모한 도전’으로 해석했다.
“확신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내가 틀릴지 모른다’는 여지를 두지 않으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고다. 폭로가 순수하고 무모할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폭로 말고 우아한 폭로가 실제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사라 카우프먼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아함은 외모나 세련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전적으로 연민과 용기의 문제다. 가령 배척당하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용기에는 우아함이 있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