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함과 불길함 가르는 건 사람 처신, 옳다고 여겨도 지나치면 불길해져 집권 2년도 안돼 터져 나오는 반발… 어리석은 보복 반복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지나침 다스릴 줄 알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대통령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이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필요하다면서 한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이 정부 위원회(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를 책임진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지 의아했다. 풍수지리를 유기체적 자연관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터를 놓고 길하니 불길하니 하는 것은 버려야 할 미신적 요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터가 길하고 불길한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길함과 불길함을 만든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촉발된 청와대의 사찰과 외압 의혹도 현 집권세력이 전 집권세력을 단죄하면서 사찰이나 외압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해 놓은 데 기인한 면이 없지 않다. 언론에 나온 동향이나 자기 조직 내에서 다 아는 정보를 모아놓은 것조차 사찰로 매도하고 대통령의 정책을 부처에 관철하는 과정까지 형식적 절차를 문제 삼아 직권남용으로 몰았다. 단지 매도하고 억지를 부렸으면 정치는 본래 그러려니 하겠지만 집권하자마자 검찰을 동원해 단죄했다. 두 실무자의 폭로는 증자(曾子)의 ‘출호이자반호이자(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처럼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 돌아가는’ 불길한 예고편이다.
청와대를 옮기고 싶을 정도의 불길함은 궁극적으로 자살 수감 등으로 이어진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사를 가리킨다. 정권이 전직 대통령들을 수사할 때는 모두 이유가 없지 않았다. 재치 있는 미국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맞다. 온갖 것에 다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들끼리 치고받는 거야 높은 데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서로에 대한 피해에 책임이 없지 않은 그들의 싸움이라고 하자. 이번 정권에서는 적장을 치면 부하들은 대부분 놔둔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적폐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전 정권에 속한 고위급 중 한 사람도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어떤 구실로라도 단죄하려 했고 눈에 띄지도 않은 중간 간부의 진급과 포상까지도 일일이 간섭했다. 아예 싹을 말리려는 시도다. 이러니 야당은 권력을 되찾으면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여당으로서는 20년 집권을 도모하지 않는 한 보복을 피할 방법이 없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의 피 터지는 싸움이 예상된다.
조선시대 기축옥사(己丑獄事)는 가장 잔혹했던 사화(士禍)다. 당시 서인(西人) 정철에 의해 희생된 동인(東人) 이발의 후손들은 지금도 제사 준비를 할 때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기면서 ‘이놈의 정철, 이놈의 정철’이라며 울분을 토한다고 한다. 쌍방에 무자비한 피해를 입힌 사화의 역사를 읽으며 조상들은 왜 저런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가 그런 어리석음의 회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꼴이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불길한 징조가 아니다. 청와대 뒤로 가파르게 솟은 북악산이 불길한 형상이 아니다. 진짜 불길한 징조는 34세의 변호사 1년 차인 청와대 행정관이 57세의 육군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는 저 위력, 아니 57세의 육군참모총장이 34세의 변호사 1년 차인 청와대 행정관이 부른다고 카페로 나가는 저 굴신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