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시작돼 현재 시즌 15가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끈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이 작품에서 주연인 외과 인턴 크리스티나 양(샌드라 오 분)은 동기 인턴인 이지가 중국인 환자를 데려오며 “중국에서는 그러지 않니?”라고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하자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당시만 해도 아직 국내에는 낯설었던 샌드라 오(한국명 오미주·48·시즌 1∼10 출연)가 미드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이 ‘사이다’ 대사가 계기가 됐다.
▷6일(현지 시간)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샌드라 오는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이날 시상식 사회도 봤다. 그는 사회를 시작하며 “두렵고 떨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선 건 여기 모인 청중과 함께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는 그가 출연한 ‘킬링 이브’는 물론이고 ‘블랙팬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비(非)백인 연출자와 배우들의 작품이 대거 후보에 올랐다. 그의 말은 모든 배우가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실력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왔다는 뜻이다.
▷그는 그레이 아나토미 출연 당시 중국계 입양아인 여자아이에게서 ‘저도 찢어진 작은 눈인데 TV에 나온 언니도 저랑 같네요. 참 예뻐요’라고 적힌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답장에 “너희 같은 아시안 친구들이 오랫동안 연기를 꿈꿀 수 있도록 꼭 롤 모델이 되겠다. 그것이 내가 더 열심히 연기하는 이유”라고 썼다. 변화를 꿈꾸고 이루려 노력하는 그가 참 아름답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