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2019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국방개혁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B 소령은 한술 더 떴다. 그는 걸핏하면 병사들을 사무실로 불러서 보고서 미흡이나 근무태도 불량을 빌미로 폭언과 함께 머리를 벽에 쿵 소리가 나도록 찧게 했다. 피해 병사들은 신체적 아픔보다 수치심과 모욕감에 분개했지만 ‘군대는 계급이 깡패’라고 푸념하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최근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지인의 아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요즘은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아직도 구태가 남아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부대 내 일부 상급자들의 폭언과 전횡 등 비뚤어진 행태를 나열했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병영 악습은 대물림되는 것 같아 입맛이 썼다.
하기야 공관병을 종처럼 부리던 대장급 지휘관 부부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게 불과 2년 전이다. 같은 해 뚝배기 집게 등 갖은 도구로 병사들에게 수십 차례 가혹행위를 한 해병대 간부가 적발되기도 했다. 군은 사달이 날 때마다 엄중 처벌과 재발 방지를 공언하지만 ‘병영 적폐’는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일각에선 개인적 일탈을 군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진급에 다걸기(올인)하는 군 문화부터 일신돼야 한다고 본다. 상명하복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생명인 군에서 진급은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우리 군은 진급에 너무 목을 맨다. 진급에 따른 특전과 명예가 군 생활의 전부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오죽하면 ‘동기(위관급)가 경쟁자(영관급)를 넘어 적(장군)이 된다’는 말이 통용될까. 진급을 유일한 목표와 보상으로 삼는 군대일수록 ‘계급 갑질’이 횡행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계급에 끼어있는 거품도 더 걷어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장군용 관용차를 대폭 축소했지만 여전히 고위 간부용 식당과 목욕탕, 헬스장을 따로 둔 경우가 많다. ‘별 개수’와 비례하는 집무실과 공관의 크기로 권위가 대변되는 형식과 관행도 여전하다.
‘참모총장과 야전사령관 등 대장은 5, 6평짜리 유리벽 사무실을 제공받고, 중장급 이하 장성은 개방형 공동사무실에서 근무한다. 별도 접견실과 내실(內室), 권위적 상징물도 없다. 계급이 높을수록 책상 위 서류뭉치가 늘어난다. 시내에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군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진규 예비역 해군대령이 2010년 펴낸 ‘국방선진화 리포트’에서 언급한 영국군 장성의 모습이다. 주영 국방무관을 지낸 그는 한국군에는 땀내 나는 장군복과 흙 묻은 장군화가 없다고 꼬집었다. 계급의 허례허식이 군의 관료화를 조장하고, 국방개혁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