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늘어나는 조울증 진단법 증상 있어도 병원 찾기 꺼려 악화… 가족 중 환자 있으면 발병 확률 높아 갑자기 말 많아지고 잠 안자면 주의
○ 혹시 나도 조울증?
조울증은 말 그대로 흥분 상태인 조(躁)증과 비통하고 불안해하는 울(鬱)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질환이다. 기분이 좋을 땐 쉽게 흥분하고 밤을 새워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우울 증상이 나타나면 만사가 귀찮고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낸다.
조증 초기엔 에너지가 넘쳐 일이나 공부가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차 비현실적인 자신감으로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이거나 다툼에 휘말린다. 돈벌이가 변변치 않은데도 클럽에서 골든벨을 울리거나 택시로 전국 일주를 나섰다가 입건되는 사례가 조증의 전형이다. 반대로 우울한 시기엔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최신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따르면 별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지 않은데도 조증과 울증이 각각 1주, 2주 이상 나타나면 조울증으로 진단한다. 양극단의 감정이 통제 불가능한 격렬한 상태로 1주 이상 이어지면 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큰 원인은 가족력이다. 조울증이 100% 대물림되는 유전병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 중 환자가 있으면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스트레스가 조울증을 촉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례는 드물다.
○ 실제 조울증 환자는 수십만 명?
조울증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17년 조울증으로 병·의원을 찾은 환자는 8만6362명이었다. 2013년 7만1627명보다 20.6% 증가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조울증 환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조울증 증세에도 병원을 찾지 않는 이가 많아서다.
2017년 인하대 등 국내 7개 대학 공동 연구팀은 전체 한국인 중 평생 한 번이라도 조울증을 앓는 사람의 비율을 4.3%로 추정했다. 결국 수십만 명이 조울증을 앓으면서도 평생 정신건강의학과를 한 번도 찾지 않는 셈이다.
물론 박 씨처럼 망상이나 환청에 시달리는 조울증 환자는 많지 않다. 박 씨는 오랜 기간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다가 병을 키운 경우다. 반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보다 조울증은 예후가 좋다.
조울증 치료는 뇌 속 신경전달물질이 균형을 찾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기분조절제를 복용하면서 심리 치료를 병행한다. 치료를 계속해도 재발 위험이 있지만 치료를 멈춘 경우에 비하면 재발 빈도가 훨씬 낮다. 고혈압 환자가 꾸준히 혈압약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 재발 위험 신호를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일찍 알아채고 전문의에게 상의하는 게 중요하다.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잠을 자지 않고 돈 씀씀이가 커지면 의심해야 한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조울증 극복 경험을 터놓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