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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타’ 김기범 CG감독 “맨땅에 해딩했던 ‘디 워’ 경험, 이번 작업에 큰 도움”

입력 | 2019-01-10 15:03:00


스크린을 가득 채운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의 얼굴. 클로즈업한 화면에는 피부의 미세한 주름과 솜털, 모공까지 생생히 보여 직접 촬영한 영상 같다. 그러나 ‘알리타’는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창조된 가상 이미지.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그렸고, 눈동자는 ‘반지의 제왕’ 골룸보다 320배 자세히 표현했다. 영화의 CG를 책임진 웨타디지털의 김기범 CG감독(41)은 “배우의 치아와 잇몸까지 모든 데이터를 담아내 구현했다”고 말했다.

다음달 개봉하는 영화 ‘알리타’는 26세기 기억을 잃어버린 사이보그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 일본 만화 ‘총몽’이 원작으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아바타’를 만들기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다. 기술이 부족해 제작을 미루다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시나리오를 받았다. 캐머런은 제작자로 참여한다.

영화 ‘알리타:배틑 엔젤’의 그래픽을 제작한 스튜디오 웨타디지털의 김기범 CG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7일 만난 김 감독은 ‘알리타’의 구현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캐릭터의 피부와 근육을 완벽히 구현했는데도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CG가 사람과 어설프게 닮을수록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이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7일 김기범 CG감독이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의 컴퓨터그래픽(CG)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스크린 속 영상은 주인공인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를 클로즈업한 모습.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사람은 평생 타인을 관찰하기에, 미세한 구조만 달라도 어색함을 느낍니다. 여러 고민 끝에 ‘알리타’를 연기한 배우 신체의 해부학 데이터를 삽입해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죠.”

김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아이언맨 2’, ‘혹성탈출: 종의전쟁’ 등으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국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스타워즈’를 보고 CG 기술자의 꿈을 키웠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묻자 뜻밖에도 심형래 감독의 ‘디 워’라고 답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촬영 소품도 직접 만들고, 동료와 단 둘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관광객인 척 도로 한복판에서 영상도 찍었어요. ‘포졸’ 역할로 엑스트라 출연도 했죠. 이렇게 ‘맨 땅에 헤딩’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야만 했던 경험은 이후 작업에 원동력이 됐다. 이방인이지만 능력을 바탕으로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의 자리에 오르자 다시 서양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한국인 특유의 ‘눈치’로 인정받았지만, 관리자가 되니 불리했어요. 직원들이 알아서 일할 줄 알았는데, 일일이 소통을 해야 하더군요. 그 때부터 한국과 서양의 문화를 나름대로 융합하려 노력했습니다.”

국내 영화의 CG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그는 “영화 ‘신과 함께’의 작업자와 작업 과정을 잘 알고 있다”며 “한정된 여건과 기간, 예산에 비해 나온 결과물은 수준급으로,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한국과 외국의 비교가 무의미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국내 소프트웨어를 외국 제품으로 다 교체하면 될까? 외국 사람을 데려오면 될까?’ 만약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비주얼이펙트 부문 후보가 된다면 한국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법이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국 CG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꼭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