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신년 글로벌 인터뷰]<3>기업전략 석학 뒤랑 佛 HEC 교수
로돌프 뒤랑 프랑스 파리 HEC 교수가 지난해 12월 20일 파리의 한 카페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2019년 경제 흐름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뒤랑 교수는 “기업인들은 늘 기업을 통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기업을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기업전략 분야의 세계적 석학 로돌프 뒤랑 프랑스 파리 고등상업학교(HEC) 교수가 지난해 12월 20일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사회 불평등과 기술 발전으로 전통 노동시장이 위협받고 있다”며 전 경제 주체가 이 해결을 위해 나서는 ‘책임 있는 자본주의’를 강조했다.
HEC는 경영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 그랑제콜로 평가받는 학교. HEC에 재직하며 ‘해적 조직’(사진) 등 수많은 명저를 저술한 그를 프랑스 파리 16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흐름이 지속될까.
―세계가 이 흐름으로 가고 있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때문인가.
“꼭 그렇지 않다. 돌이켜 보면 사회주의가 현실화하기 전 18, 19세기에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발전하는 데 있어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다. 둘이 충돌하기도 한다. 여러 국가가 자본주의 속에서 그들의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뒤랑 교수는 휴대전화를 통해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기술 발전이 오히려 자국 우선주의를 부추긴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유럽 내 보호무역주의의 뚜렷한 흐름이 3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다.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까.
“브렉시트 영향은 영국 경제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인들이 스스로 자기 발을 쏜 격이다. 그간 영국이 누렸던 것을 유럽 각국이 나눠서 갖게 될 거다. 특히 프랑스에 큰 호재다. 런던에는 50만 명의 프랑스 국민이 산다. 이들 중 상당수가 브렉시트 후 자본과 비즈니스를 갖고 프랑스로 돌아올 거다. 금융업과 자동차산업의 주요 기업들도 영국에서 유럽 대륙으로 근거지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노동시장, 상층부도 하층부도 모두 위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 글로벌 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그의 경제 방향은 맞는 흐름인가.
―하지만 지난해 말 등장한 ‘노란 조끼’ 시위로 마크롱 정부가 휘청거린다. 프랑스인들이 왜 이런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까.
“소통 오류다. 국민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부유세 폐지를 비판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부유세가 없어지면 그 돈으로 기업과 산업에 투자로 이어지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본인의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협약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금에 와서야 그런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노란 조끼’는 특정 세력이 주도하지 않은 자발적 시위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맞다. 그간 사회 운동은 극좌, 극우 세력들 중심으로 이슈를 만들고, 국민들의 불만을 고취시키고, 이를 조직화해 무리지어 나오게 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정책을 관철시키거나 무산시키는 방식이었다. ‘노란 조끼’는 다르다. 누군가에 의해 조직화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특히 정치인과 노조를 거부했다. 노조도 깜짝 놀랐을 거다. 노조는 시위대에 “우리가 너희를 대표하도록 되어 있었잖아”라고 외쳤지만 ‘노란 조끼’는 “우리는 너희를 원하지 않아”라고 반박했다.”
뒤랑 교수는 ‘노란 조끼’의 동력이 결국 사회 불평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프랑스뿐 아니라 모든 선진국 경제의 문제가 양극화”라며 “전체 부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인구 90%의 부는 늘 현상 유지”라고 했다. 국민의 분노가 높아지고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면서 극단주의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평등의 핵심에는 ‘실업’이 있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실업 위험성은 더 커졌다.
“노동시장 문제를 둘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첫째, 지난 20, 30년간 양질의 인적자원과 주변화된 노동력으로 노동시장 양극화가 커졌다.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인력이 건강한 노동시장에 투입되지 못하면서 전반적인 고용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다. 둘째, 양질의 교육을 받아 노동시장에 편입된 이들도 기술 발전 등으로 더 이상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 설사 고용이 이뤄져도 단기에 불과하다. 서비스 분야 노동력을 다양화하고, 재활용 산업 같은 신규 산업에 활발히 투자해야 한다. AI, 로봇, 자동화 등으로 극소수의 선택받은 노동력도 부정적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 “기업인들, 올 한 해 정치적 긴장에 촉각 곤두세워야”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한국도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최저임금을 올렸다.
“프랑스도 최근 10년 국가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덫이 만들어졌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주들은 임금 대신 보너스를 올리는 방법밖에 쓸 수 없어 부담이 커진다. 또 최저임금 인상에만 의존하면 최저임금 기준 바로 위의 소득을 가진 이들이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제외되는 역효과가 난다.”
―노동시장에 관한 프랑스의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
“재능을 가진 이들을 육성하고 키울 금융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 프랑스가 미국 실리콘밸리만큼 자원과 기회를 제공할 수가 없다. 아이디어를 갖고 사업체를 확장시키는 것 자체가 미국에 비해 매우 어렵다.”
뒤랑 교수는 프랑스가 주력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기업은 단지 주주들의 이익이 아닌 공적 이익을 기업의 목표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수익의 일부를 공적으로 환원하거나 환경과 같은 공적인 목적을 가진 기업에 정부가 상당한 혜택을 준다. 기업의 목적이 단지 주주들의 이익을 높여 주는 데만 있는 건 아니다. 21세기형 미래 자본주의의 핵심은 스타트업 기업과 공적 임무를 가진 영리기업의 활성화다. 소득 불평등과 환경 문제도 정부, 기업, 사회 모두가 책임지는 공생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후 변화도 중대한 도전 과제다. 한국의 탈원전 정책도 논란이다.
“마크롱 정부는 전기 생산의 원전 의존도를 기존 80%에서 50%까지 낮추려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동시에 싼 에너지를 원한다. ‘노란 조끼’ 시위도 환경세를 부과하려다가 국민 반발에 부닥친 것 아닌가. 국민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할 때는 늘 그 후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원전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원전은 대기 내 이산화탄소(CO₂)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
―올해 기업들에 닥친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긴장이 커질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선 여부, 브렉시트 현실화,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권 부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지 기반 약화 등을 주시해야 한다. 잘나가는 기업도 지금의 경쟁 우위를 몇 년 후까지 유지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어느 지역에 사업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정치적 긴장을 잘 살펴야 한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