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징용 피해자가 부상이나 신체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전범기업은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9부(부장판사 고의영)는 11일 강제징용 피해자 이모(96) 씨가 히타치조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히타치조센은 이씨에게 5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경북 영양군에서 거주하던 이씨는 1944년 9월 강제징용돼 일본 오사카 소재 히타치 조선소에서 5개월 가량 근무했다. 그러다 동양제약 앞 방파제 보수공사장에서 3개월간 노동자로, 다가스끼에 있는 터널공사장에서 3개월 가량 근무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이씨의 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이씨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1심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 5000만원이 과한 액수인지 등이다.
앞서 1심은 이씨가 청구한 위자료 액수 1억2000만원 중 5000만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 이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고, 기업 측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도 언급했다.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으로 볼 수 있는 3년 이내에 이 소송이 제기돼 문제 없다는 1심 판단과 같은 결론이다.
재판부는 “어떤 부상이나 신체 피해를 입었다는 점은 밝혀진 바 없다고 해도 일본국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조해 불법적으로 징용하고 이씨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원치도 않는 노역에 종사하게 한 불법성의 정도, 패전 이후에도 이씨를 방치해 이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밀항해 귀국했던 점, 70년 이상 기간이 경과해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긴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