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前대법원장 사상첫 檢소환 “법관들 많은 상처, 조사까지 받아… 모든 책임 내가 지는 것이 마땅” 징용재판 개입 등 혐의 전면부인
입 꾹 다문채 조사실로 재판 개입과 법관 사찰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것은 사법부 71년 사상 처음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기 직전인 이날 오전 9시 대법원 정문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께 이토록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또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도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부당한 인사 개입 및 재판 개입을 부인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또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이 각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이 관여했다고 보는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의혹 40여 가지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9시 반부터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개입한 의혹을 먼저 조사했다. 또 그가 추진한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에 반대한 법관들을 뒷조사해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를 만든 뒤 인사 불이익을 줬는지도 추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기억이 안 난다”, “실무진이 한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검찰은 이르면 13일 양 전 대법원장을 한 차례 비공개 소환한 뒤 다음 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부터 임기를 시작한 조재연 신임 법원행정처장은 취임사에서 “오랜 세월 사법부의 닫힌 성 안에 안주하여 사회 변화와 시대정신을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무릇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며 사법부의 혁신을 촉구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