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지표 팔마 배율에 따르면 한국은 최악의 불평등국가 아니다 잘못된 인식-정책으로 성과 나올까 국민의 알 권리 외면한 신년회견… ‘청와대 정부’는 국민 위에 군림하나
김순덕 대기자
10일 신년 회견에서 이 질문을 받은 대통령의 입술은 굳어 있었다.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고 새로운 답이 필요하지 않다”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앞서 중국 기자가 한반도 평화 관련 중국의 역할을 묻자 “아까 답을 드렸다”면서도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같은 내용을 반복 설명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경제 대신 짐승중심경제로 가자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하지만 방향이 옳다고 지금의 방법도 옳다는 주장은 독선적이다. 경제정책이 옳다는 걸 확실히 체감시키는 것이 대통령의 올해 목표라지만 이미 적잖은 국민은 소득주도성장 핵심인 최저임금 급등의 폐해를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최저임금 때문에 직원 10명의 작은 출판사에서 2명이 떠나도 인원 보충을 못 하고, 정부지원책도 복잡해 포기하더라고 9일자 뉴욕타임스까지 세계에 전파했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감의 원천을 노출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인사를 놓고 “친문(친문재인) 강화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안타깝다. 청와대엔 친문 아닌 사람 없다”는 발언을 통해서다.
대통령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작년 말부터 청와대 개편론이 빗발친 건 대통령을 바꿀 순 없으니 비서진이라도 바꿔 국정 쇄신을 하라는 의미였다. ‘운동권 청와대’로 출범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는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영입해 싫은 소리도 청해 들었다. 원조 친문에다 운동권 출신인 노영민 기용은, 마치 원조 친박 김기춘을 불러들임으로써 윗분의 뜻만 떠받들다 결국 몰락을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의 퇴행을 연상시킨다.
친문패권주의와 이념으로 뭉친 ‘청와대 버블’ 속에서 비서진이 어떻게 보고하든, 무엇을 써주든 믿고 따르는 대통령이면 자신감에 불타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는 기자회견문도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잘못 입력한 그대로 나왔을 거다.
‘청와대 정부’는 가짜뉴스 박멸에 나서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진보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극단적 불평등에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지표’로 주목한 게 팔마 배율이다. 하위 40% 가구의 소득점유율 대비 상위 10%의 비중을 말하는데 2018년 유엔 지속가능발전지수에 발표된 한국의 팔마 배율이 1.0으로 스웨덴과 같다. 눈을 씻고 찾아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자료 역시 한국은 1.04로 네덜란드와 같다(2015년). OECD 36개국 중 우리보다 팔마 배율이 높은 불평등 국가가 무려 22개국이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서 과거처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대목은 더 섬뜩하다. 청와대가 경제부총리의 대통령 면담도 불허하고, 영장 없이 개인 휴대전화까지 탈탈 터는 등 모든 권력기관을 다 합친 것보다 크게 국민을 실망시킨 일이 미꾸라지와 망둥이의 폭로로 드러났는데도 어떻게 써준 대로 읽을 수 있나.
문 대통령은 “정책의 최종적인 결정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그렇게 법과 제도와 국민 위에 존재한다면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한 건지 꼴뚜기에게 물어보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