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신년 인터뷰]<3> ‘라이베리아 파파’ 조형섭 목사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은 품었지만 그곳이 아프리카 서부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라이베리아가 될 줄은 몰랐다. 1986년 조형섭 목사(67)는 사역 중이던 교회 담임 목사와 현지에서 의류 사업을 하다가 귀국한 이들을 만났다. 교회가 없어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가 나왔다. 문득 담임 목사가 “아프리카에서 선교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엉겁결에 조 목사는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선교할 수 있나요? 할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가족과 상의도 못 한 상태에서 한 답변이 라이베리아 선교의 씨앗이 됐다.
아프리카 서부 라이베리아에서 30여 년간 선교사로 활동중인 조형섭 목사(앞줄 오른쪽)와 부인 오봉명씨가 현지 가정을 방문해 아기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조 목사는 “라이베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경제가 피폐해져 교육과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형섭 목사 제공
서울 은평구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한 조 목사 부부.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돌이켜 보면 무모했다. 당시 김포공항에서 이 땅을 다시 못 밟을 수 있다는 각오 속에 떠났다. 온갖 풍토병과 내전, 에볼라를 겪으면서 30년 동안 안 죽고 살아 있을 줄 몰랐다.(웃음)”
―14년의 내전을 어떻게 겪었나.
―30여 년을 지탱한 힘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가라고 했지만 떠나라는 메시지를 주신 적이 없으니까. 현지인들에게 ‘당신이 어려울 때는 항상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다. 무슨 방도를 쓰더라도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에볼라 사태 때는 어땠나.
“사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잠잠해져 한국으로 돌아와 안식년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바이러스가 더 확산됐다. 주변 만류를 뚫고 현지로 가려는데 인천공항 출입국사무소에서 ‘에볼라에 감염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라이베리아에 무덤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에볼라에 걸린다면 절대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고 출국했다. 현지인들이 돌아온 저를 ‘파파’라고 하더라.”
이 부부는 2014년 몬로비아 인근 정커팜 지역에 장애아들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그레이스 학교를 세웠다. 일반 교실은 물론이고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된 특수교실, 도서관, 강당, 우물 등이 들어섰다. 적금과 환갑 기념으로 들어온 축의금으로 땅을 매입했고, 밀알복지재단이 건립을 지원했다.
―향후 계획은….
“소외된 자, 병자, 희망 없는 사람들을 도우라는 게 예수님의 참뜻 아니겠는가. 이곳에는 내전과 질병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많다. 바로 그곳에 저의 빈 무덤이 있다. 내가 죽어도 그 땅의 사역은 지속되리라고 생각한다.”
―건강 때문에 잠시 귀국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10월 몸의 왼쪽 감각이 사라져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보인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나님, 평생 아프리카 선교 사역을 했는데 이게 뭡니까’라는 말이 나오더라. 그런데 한국에서 정밀 진단을 받았더니 특별한 이상은 없고 몸이 너무 쇠약해졌다고 하더라. 전기 수도 배관 목공 등 그동안 ‘노가다 선교’를 너무 많이 했다. 몸에 이상이 없다니 하나님이 또 일하라고 하시나 보다 싶다. 몸을 추스르고 다음 달 말에 출국할 예정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