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빙하기]특성화고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끝모를 취업난에 우는 청춘들
아무리 취업이 어려워도 ‘더 나은 길’은 있다고 믿었다. 고졸보단 대졸이 밥벌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금융위기 이후 대졸 실업자가 크게 늘자 차라리 특성화고를 나와 일찍 취업하는 게 낫다고도 했다. 하지만 2019년 대한민국에 ‘더 나은 선택’이란 없었다.
최근 발표된 취업 통계를 보면 고졸부터 대학원 졸업생까지 모든 예비사회인의 취업률은 일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동아일보는 각각 특성화고와 전문대, 4년제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10일 오전엔 이들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서로의 취업준비 경험담을 나눴다.
취업 미로엔 출구가 없었다. 대기업에 연거푸 떨어진 뒤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오히려 더 깐깐하게 실무경력을 요구했다.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 게 유일한 해법이지만 요샌 인턴이 공채만큼 어렵다. 이 씨는 “대기업이 신입공채를 줄이고 경력직으로 대체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어딜 가라는 말인가’ 하고 마음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취업시장에선 ‘석사=애매하게 공부한 사람’이란 편견이 있어요.” 신모 씨(27)는 “상경계가 아니면 대학원을 나와도 홀대받는 게 한국 취업시장”이라고 했다. 2014년 유학을 떠난 그는 4년 만에 귀국한 뒤 가장 먼저 각종 자격증을 땄다. 이후 9곳에 원서를 냈지만 모두 불합격했다. 지금은 3개월짜리 연구소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취업이 어려운데 일단 대학원에 가면 시간을 벌 수 있을까요?’ 취업게시판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이런 글에 신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계에서 연구로 승부를 보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학원 진학을 말리겠어요. 학위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나이만 차 오히려 취업이 더 어려울 수 있어요.”
○ 눈 낮출 곳 없는 특성화고 및 전문대 졸업생
이모 양(19)은 조기취업이 가능하다는 부모님의 조언에 특성화고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난해 산업현장에서 학생들의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특성화고 3학년이 학기 중 현장실습을 하며 동시에 취업하는 조기취업을 금지했다. 더욱이 여러 공공기관이 현 정부 시책에 따라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취업문은 더 좁아졌다. 이 양은 “특성화고 진학을 후회하며 뒤늦게 대입에 뛰어드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며 “취업률이 높다고 해 진학했는데 정책이 수시로 바뀌니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지방 전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양모 씨(28)는 2017년 2학기부터 취업을 준비했지만 1년 반째 ‘취업준비생’이다. 대기업은 줄탈락했고, 중소기업에서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양 씨는 “학점이 좋으면 중소기업에서 ‘붙여봤자 이직할 것’이라며 잘 뽑지 않는다”며 “조금 있으면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뀔 텐데 최저임금마저 크게 올라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본인이 꿈꾸는 채용시장의 변화’를 물었다. 신 씨는 “공채보다 유연한 상시채용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양은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 채용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연장자인 이 씨는 “모두가 정규직이 되기 어렵다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취업한파에 갇힌 ‘겨울왕국’이었다.
김수연 sykim@donga.com·조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