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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장영훈]내홍 휩싸여 위기 눈감은 대구은행

입력 | 2019-01-15 03:00:00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새해가 되면 대구은행 달력을 구하기 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 걸어두면 복 기운이 깃들고 돈을 불러온다는 속설 때문에 일찌감치 동이 났다.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며 달력의 쓰임새가 예전만 못하지만 중장년층은 여전히 대구은행 달력을 찾는다.

DGB금융지주의 주력 계열사인 대구은행은 대구 경북 사람들의 남다른 애정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7년 첫 지방은행으로 출발한 이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같은 숱한 시련을 이겨내고 매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그래도 은행은 대구은행”이라며 흔들림 없었던 대구 경북의 충성 고객이 있다. 그래서 대구은행이 입주한 건물 주변의 땅값이 들썩이던 때가 있었다.

지역 대학생들은 가고 싶은 기업 가운데 최상위권으로 대구은행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꿈과 풍요로움을 지역과 함께한다’는 경영 철학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지역을 기반으로 세계로 뻗어가겠다는 미래상에 공감하는 여론을 토대로 긍정적인 기업문화를 축적했다.

하지만 대구은행의 50년 넘는 역사를 지탱해온 고객 신뢰가 무너질 위기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여직원 성추행과 비자금 조성, 채용 비리, 펀드 손실금 특혜 보전 등 2016년부터 불거진 각종 악재로 은행 이미지는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은행 내부의 특정 학벌과 계파 싸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논란과 의혹이 난무하고 검경의 수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곧 나아질 것이라는 고객의 기대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DGB금융지주 이사회가 김태오 회장의 대구은행장 겸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내부 지지조차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추천된 은행장 6∼8명이 비리 의혹과 자질 논란이 있어 겸직이 불가피하다고 이사회는 설명하지만 은행노조를 설득하지 못해 대립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게 비친다. 일부에서는 은행장 후보 경력 문턱을 낮췄는데도 내부 인사를 발탁하는 전통을 이어갈 인물이 그렇게 없냐는 자조까지 나온다.

대구은행이 내홍에 휩싸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금융환경을 직시하고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본분을 잊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8일 국민은행은 19년 만에 전체 조합원 3분의 2 이상이 참여해 파업을 했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고객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가까운 데다 지역을 사랑하는 것 같아 오랫동안 대구은행을 이용했다는 고객은 “다른 시중은행 애플리케이션이 훨씬 사용하기 좋은데 이제껏 왜 대구은행을 고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꾼 은행의 달력을 집에 걸었다고 한다.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j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