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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갈림길서 길잃은 4강외교

입력 | 2019-01-15 03:00:00

한반도 명운 가를 대전환 시기
美와 경협 이견, 日과 과거사 갈등… 中-러와도 외교적 거리 못좁혀
“남북관계 치우친 정부 전략 부재… 북핵 해법 열쇠 쥔 4강 놓칠 우려”




#1. “어떻게 대통령비서실장 후보에 미중일러 4강 대사가 한꺼번에 거론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12월 말 여권 핵심 관계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후임 인선이 한창일 때 이렇게 말했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최종 발탁됐지만 조윤제 주미 대사, 이수훈 주일 대사가 동시에 거론됐고, 우윤근 주러 대사는 본인이 고사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이제부터 4강 외교를 기반으로 북핵 장기전에 들어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2. 요즘 미국의 지한파 인사들은 방한 시 외교 관계자들을 만날 때 자주 “한미 관계를 이대로 둘 거냐”고들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말은 지금 북핵 해법을 둘러싼 한미 양국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까지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미 간 정책 차가 너무 커서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반도 명운을 가를 북핵 비핵화 협상의 분수령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작 이를 추동해 결과물을 낼 한국의 4강(强) 외교는 실종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만큼 북-미 중재자 역할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과도 협력하면서 외교적 입지를 넓혀야 하지만, 북핵 외교에 가려졌던 해묵은 양자 현안들에 발목이 잡혀 전통적인 관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 북핵 문제에 ‘다걸기(올인)’하다가 정작 북핵 외교를 움직일 핵심 국가들을 상대할 전략전술과 기초체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4강 국가별 현안들은 봇물 터지듯 불거지고 있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개 여부를 앞두고 남북 경협 과속 논란도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일본과의 협력은 위안부 합의 재검토, 화해치유재단 강제 해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레이더 갈등 등으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방북하는 순간 삽시간에 나머지 두 나라와의 외교적 거리도 멀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 4강 외교 최전선에 있어야 할 대사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수준이다. 주재국에서의 존재감이 이전만 못하다는 얘기다. 조윤제 주미 대사만 해도 북핵을 실무 총괄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한 외교계 원로는 “대통령의 복심들이 부임했지만 주재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심어줄 역량은 부족한 듯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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