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사이를 뛰어넘어 벗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시쳇말로 여자에게 있어 ‘남자 사람 친구’를 구하는 일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이런 물음에 답해 줄 조선시대의 여인이 있다.
반면 마흔이 넘은 사내 이생은 좋은 집안 출신의 양반이었으나 재주도 없고 성실하지도 않았다. 그는 벼슬을 얻고자 서울에서 남의 집에 의탁하던 중 행랑채에 사는 초옥을 만나 아름다움에 반한다.
초옥은 늘 기개가 있고 문장을 잘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현실은 그와 반대였다. 그런 초옥의 눈에 물 긷는 하인들에게 호령하는 이생이 들어왔다. 초옥은 이생의 호령을 사내의 기상으로 느꼈으며, 이생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안 순간 그만큼 문장을 잘 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때부터 초옥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 시작됐다. 이생을 향해 꽃을 꺾어 던지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초옥은 이후 이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마이웨이’를 걷는다. 이생이 신분이 미천한 자신과 진심으로 문장을 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옥이 이생과 연을 맺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생은 어린 아내를 두고 있었고 초옥 역시 남편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초옥은 남편에게 죽을 정도로 구타를 당한다. 초옥이 주변의 평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면서까지 이생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옥의 소문을 들은 기생들은 초옥이 보잘것없는 선비와 몰래 사귀면서 스스로 정절 있는 행동이라 하는 것에 의문을 표한다. 이에 초옥은 대답한다.
“언행이 비록 칭찬받기에는 부족하지만 또한 정절에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뜻이 변치 않는 까닭에 그 행동이 비록 동떨어진다 해도 본래의 뜻을 이을 수 있고, 말이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까닭에 섬기는 바가 비록 그르다 해도 또한 하늘의 도를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남녀 사이에서 ‘사람 친구’의 관계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기지우(知己之友) 관계를 바탕으로 한 초옥의 적극적인 애정관계는 보수적 사회 속에서 시대를 앞서간 것임에 틀림없다.
임현아 덕성여대 언어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