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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한 대한체육회-문체부… “엄벌” 주문한 文대통령

입력 | 2019-01-15 03:00:00

올해 국가대표 훈련개시식 비공개
사상 초유 결정에 체육계 분통 “이 판국에 뭘 더 감추려드나”
선수촌장-사무총장 선임 연기… 文대통령 “성폭행-폭행 철저 수사”




“말도 안 됩니다. 감추려 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요. 모든 걸 열어 놓아야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 해답도 찾는 것 아닐까요. 뭐만 터지면 숨기려 하니까 괜한 오해를 삽니다. 폐쇄성 탓에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겁니다.”

한 겨울 종목 대표팀 지도자는 14일 접한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체육회가 1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9년도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을 사상 처음으로 비공개로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주 회의와 이기흥 회장 결재를 거쳐 이 행사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현재 진천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심석희를 비롯한 빙상 대표팀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성폭력 문제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안이한 현실 인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대한체육회가 성폭력, 폭행, 음주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선수촌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선수촌을 공개해 (성)폭력이 자행된 공간으로 지목된 라커룸, 훈련장 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책을 마련하고, 침묵하던 선수나 일선 지도자들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선수촌은 지나치게 폐쇄된 공간이었다. 외부 접근을 차단한다고 해결될 이슈가 아니다. 투명하게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특정 선수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다 보면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 선수 보호 차원의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는 최근 성폭력 사태에 대해 선수촌 훈련장 및 경기장에 폐쇄회로(CC)TV 및 라커룸 비상벨 설치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허술한 피해자 신고 과정이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원성을 듣던 성폭력 사건 1, 2심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등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4일 현재 진천선수촌에는 묵묵히 땀을 흘리는 국가대표 524명이 머물고 있다. 배상일 여자유도 대표팀 감독은 “훈련 개시식 비공개는 바람직스럽지 않다. 대표팀이 꿈이었던 다른 선수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심껏 가르쳐 온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매도돼서는 안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15일 이사회에서 할 것으로 예정됐던 신임 사무총장과 선수촌장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대한체육회에 대한 관리, 감독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번 사태 관련 대책은 거창하지만 진척은 지지부진하다. 문체부는 9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4가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태 파악 및 준비 기간만 최소 3개월에서 1년으로 잡고 있다. 시급한 ‘체육계 성폭력 전담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에서 외부 전문가를 추천받은 후에 구성하기로 했는데, 언제 가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문체부는 “빙상계 성폭력 의혹이 5, 6건 더 있다”는 ‘젊은빙상연대’의 주장에 대해서는 “예산과 인력을 확보한 후 그 진상을 파악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체육계의 폭력 및 성폭력과 관련해 “드러난 일뿐만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히 조사, 수사하고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안영식·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