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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대북지원을 남북 양자 간 진행하는 것이 더 좋은 이유[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 2019-01-15 14:00:00




Q. 남북은 지난달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보건의료실무회의를 개최하면서 인도적 물품의 추가적인 대북지원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습니다.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남북 협상 국면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그 경우 온전한 의미의 ‘인도적’ 지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얼마 전 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초청으로 개최된 강연에서 오준 전 유엔 대사는 안보리 제재의 위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원조 형태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그 취지와 감시의 용이성 측면에서 보다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민족 내부의 화합이라는 취지 아래 양자 원조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전략적·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양자원조는 오히려 북한의 반감을 사고 남남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그 효율성에 의문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양자원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먼저 질문을 살펴보면 ‘온전한 의미’의 지원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말하는 ‘온전한 의미’를 질문 전체 맥락으로 유추해보면 정치적 목적 등이 없는 순수한 지원 자체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질문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과정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쌀, 비료 등의 지원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바라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북이 아닌 제3국가에 인도적 지원을 한다면 굳이 협상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랜 분단으로 인한 상호불신과 적대를 해소하고 한반도에 온전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북이 필요한 것을 먼저 주고 그 이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이른 바 햇볕정책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선공후득’이었습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북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으며 평화를 얻어내겠다는 정책이었습니다.

아울러 질문을 보면 ‘전략적·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양자원조는 오히려 북한의 반감을 사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인도적 대북지원 과정에서 북이 반감을 가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비핵·개방·3000이나 통일대박과 같은 흡수통일 의도가 다분한 지원 정책에 대한 반발을 한 것일 뿐입니다. 바로 그것이 전략적·정치적 이익을 추구했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원조’라는 표현도 북은 아마 거부할 것입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 북은 일방적인 시혜적 차원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뤄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나아가려는 북의 입장에서 일방적 시혜 차원의 지원을 받기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원조 형태의 지원이 불필요하다거나 옳지 않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과거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이 이어지며, 양자 간 대화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안으로 다자간 지원을 선택한 것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도 분명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 양자 간 지원보다 더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고, 모니터링도 용이하다는 주장에는 인도적 지원을 오랫동안 진행해 온 국내 민간단체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어느 정도 경제적 위기 상황이 호전된 북은 이후 일방적 지원이 아닌 개발협력 형태의 지원사업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내 민간은 지원현장이 분명한 지역에 국제기구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국제기구가 원하는 수준의 사업 조건을 북에 요구했고, 이를 북은 수용했습니다. 국내 민간의 인도지원 역사도 이제 20여 년이 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숙해왔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사업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에이스경암의 대북지원 차량이 파주를 지나 북으로 향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아울러 양자 간 지원은 다자간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다자간 지원은 실질적인 접촉면이 협소합니다. 국제기구의 사업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현장 모니터링을 수행합니다. 지원과 분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자 간 접촉은 지원과정에서 또 다른 부분도 함께 고민합니다. 바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혹은 당장 통일을 지향하지는 않더라도 남과 북이 만나 관계를 맺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상호 이해의 측면에서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지원과정을 통해 우리가 북을 이해하는 것도 있지만, 북 역시 남측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즉 숙제를 던져주는 것입니다. 지원과정에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들이 북을 만나게 됩니다. 접촉면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점이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여 면을 이뤄내듯, 지원과정을 통한 남북의 만남이 이어지면 그것은 결국 남북관계 전체에 긍정적 작용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인도적 대북지원이 활발했던 2007년의 경우 한 해 무려 15만 명이 북을 다녀왔습니다. 이는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북을 찾아 접촉의 면을 넓히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초기 우리의 지원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으려 애썼던 북 당국도 지원이 이어지며 공식적으로 고마움을 표했고, ‘대한민국’ 국호가 박힌 쌀, 비료 포대를 그대로 주민들에게 공급했습니다. 이는 인도적 대북지원이 퍼주기가 아님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지난 해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갖으며 상호 신뢰를 쌓아갔듯, 남북은 끊임없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인식해야 합니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수단이자 평화의 도구인 셈입니다.

이제 달라진 북의 상황과 남북관계에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인도지원은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대북제재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정부는 물론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민간통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제 입장에서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과 지금까지의 성과를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이기범 회장님의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먼저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북이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며 힘겨웠을 당시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울러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연결고리로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만나 적대의식을 줄이고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 민간단체들은 장기간의 활동을 통해 신뢰와 전문성을 축적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행위자(Actor)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기 인도적 지원을 개발협력사업으로 발전시키면서 협력의 수준을 향상하고 범위를 확대한 경험은 앞으로 남북관계를 펼쳐 가는데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효율성의 측면이나 남북관계의 발전, 그리고 한반도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서 남북 간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한 가지 추가하자면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은 총 지원액의 17%에서 최대 30%까지 중개비 등 명목으로 제한 뒤 지원됩니다. 양자 지원이라면 그런 불필요한 비용도 줄일 수 있겠죠?

염규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홍보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