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아일보 DB
체육계의 성폭력 근절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15일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CPBC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쉬쉬해왔던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지적하며 “(스포츠 미투를 계기로)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하나의 힘으로 묶어서 이번 기회에 스포츠계에 있는 성폭력을 뿌리 뽑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체육계 폭력·성폭력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배경에 대해 “코치와 선수 간에 권력관계가 굉장히 수직적이며, 선수의 미래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렵다”며 “훈련 환경이 매우 폐쇄적이고, 이런 사건이 벌어져 처벌 된 후에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선례들이 있어 치유되기 어려운 환경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테니스 선수 김은희 씨의 사례를 들었다. 2001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김 씨는 코치에게 1년간 성폭행을 당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 씨는 2016년 한 대회장에서 여전히 코치로 활동중인 가해자를 마주치고 뒤늦게 고소를 진행했다. 2017년 10월, 법원은 1심에서 해당 코치에게 징역 10년과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스포츠 미투계에서 그나마 가시적인 결과를 본 케이스로 기록됐다.
이미 체육계의 신고 시스템은 여러 군데 마련되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건 담당자가 문제 처리에 있어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해결하기보다는 협회나 조직의 입장에서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진=대한체육회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쉬쉬하던 체육계 성폭력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경기장에 방범 카메라와 라커룸에 비상벨을 설치하고, 선수촌에 여성 관리관과 인권상담사를 늘리겠다”며 비상 대책을 들고 나왔다.
정 교수는 “가장 책임감을 느끼고 분골쇄신해야 할 단체가 내놓은 대책이 안이한 수준”이라며, 오히려 대한 체육회보다 문체부의 대책과 여야 정치권의 대책이 더 현실성 있다고 주장했다.
문체부는 지난 9일 노태강 제2차관이 발표자로 나서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노 차관은 “오는 3월까지 체육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영구제명 확대 등 처벌을 강화하고, 성폭력 등 체육 분야 비위 근절을 위해 민간주도 특별 조사도 실시할 것”이라며 “체육단체 성폭력 전담팀을 구성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선수촌 합숙훈련을 개선해 선수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후속 조치는 오는 16일 발표될 예정이다.
또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지도자의 폭력·성폭력으로부터 운동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주요 골자로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여야가 내놓은 운동선수보호법안에 대해 “그동안 취약했던 운동선수의 인권을 고려했을 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은 인권 중 기본이고,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교육도 추가돼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변주영 동아닷컴 기자 realist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