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프리미엄 가전 ‘LG시그니처’의 성공요인
5년 전 LG전자에 ‘초프리미엄 가전’을 표방하는 LG시그니처 개발을 지시한 구본준 LG그룹 부회장(당시 LG전자 부회장)의 말이다. 2014년 구 부회장을 포함한 LG전자 경영진은 과연 회사가 미래에도 계속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속에 초고가, 초프리미엄 브랜드 제품 개발을 기획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고성능을 장착한 가전 브랜드 LG시그니처다.
현재 LG시그니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제품 출시 첫해(2016년)와 이듬해 모두 목표 대비 두 배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글로벌 브랜드 선호도 역시 상승 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실시한 글로벌 브랜드 선호도 조사 결과 2017년 대비 2018년 LG 브랜드 선호도가 전 세계 시장에서 7% 상승했다”며 “유사한 다른 브랜드 제품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도 LG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프리미엄 지불 의향’ 역시 7% 올랐다”고 설명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64호(2019년 1월 1호)에 실린 LG시그니처의 성공 요인 분석 내용을 요약한다.
LG시그니처의 탄생은 2014년 10월 경영진 주도로 만든 ‘1등 디자인 위원회’에서 결정됐다. 당시에도 LG전자는 분명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LG가전을 꼭 다시 사고 싶다’ ‘이번에 LG가전으로 싹 바꾸고 싶다’라는 마음을 먹게 하고 구매를 실행하게 할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경영진 내부에서 제기됐다.
스스로 깨달은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이 곧바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룹 차원에서 역량을 결집해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고, 거듭된 논의 끝에 ‘디자인’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외관상 아름다움이나 고급스러움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자, 사용자 경험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싱킹’이 핵심이었다.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와 제품 개발을 위한 위원회의 이름이 ‘1등 제품 위원회’가 아닌 ‘1등 디자인 위원회’가 된 이유다.
○ 평소보다 5배 많은 인력 투입해 제품 개발
본격적인 개발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당연히 디자인이 우선이었다. 내부 역량으로만 진행할 경우 관성에 매몰될 수 있다는 생각에 외부 자문도 많이 했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 토르스텐 발레우르도 LG시그니처 마스터 디자이너로 자문단에 합류했다. 그렇게 1년간 사용자 경험 향상과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외관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직 디자인 관점에서 고민을 했다.
엔지니어들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던 소재와 공법을 적용해 그런 기능까지 넣어 만들 수는 없다”며 반발했다. 이때 “돈을 벌지 않아도 좋다. 인력도 최대한으로 지원하겠다”는 구 부회장의 메시지가 전달됐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엔지니어들의 반발이 엔지니어들의 자존심을 건 ‘승부욕’으로 전환된 것이다.
자연스레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협력해 일하기 시작했다. 가령 자동으로 서랍 선반이 나오는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세탁기나 청소기 모터를 다루던 엔지니어들이 힘을 보탰다. 시그니처를 만들기 위해 투입된 제품 한 개당 개발 인력은 기존 가전제품 개발과 비교해 봤을 때 5배나 됐다. 이렇게 LG전자는 기술적, 공학적 한계와 어려움을 차근차근 극복해 나갔다. 각기 다른 가전을 만들던 엔지니어들의 ‘집단 지성’이 이뤄낸 성과다.
○ 최고 프리미엄 이미지 통한 ‘브랜드 낙수 효과’
현재 LG시그니처는 ‘작품 수준의 가전’이라는 최고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LG시그니처가 LG전자 전체 가전 브랜드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소비자들이 최고 브랜드라고 인식하는 순간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 제품을 우선적으로 들여다보고 예산이 부족할 경우 같은 브랜드의 하위 제품 구매를 고민하게 된다”며 “최고 브랜드가 끼칠 수 있는 일종의 ‘브랜드 낙수 효과’”라고 설명했다.
현재 LG시그니처는 5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장보영 LG전자 상무는 “브랜드 가치로만 보면 아직 유럽산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에 좀 밀리고 있지만 ‘전통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은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에선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는 ‘빌트인 가전’ 시장 공략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