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의회, 브렉시트 합의안 찬반투표 하원서 100표 넘는 차이로 부결땐 메이 총리 사퇴 유력… 혼란 불가피 노동당 “총리 불신임안 제출” 선포… 불신임안 통과땐 조기총선 돌입 EU는 브렉시트 7월로 연기 검토
메이 총리가 제시한 정부안이 통과되려면 하원 전체 650명 중 표결권이 없는 의원을 제외한 639명의 과반인 32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야당인 노동당이 강력 반발하는 데다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100명 이상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 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투표 결과는 영국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패배로 기록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영국 사회의 대혼란은 물론이고 영국과 EU 관계를 비롯해 국제 질서에도 후폭풍이 예상된다. 보수당의 유력 정치인인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은 “겨울이 오고 있다”고 표현했다.
메이 총리는 마지막까지 일대일로 의원들을 만나 읍소와 협박 전략을 이어갔다. 그는 “브렉시트 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역사가 당신의 투표를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협상안은 ‘EU를 떠나라’는 2016년 국민투표의 뜻을 잘 따랐느냐, 우리가 영국의 경제 안보를 잘 지켰느냐를 묻는 투표”라고 주장했다.
이번 안에 반대하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번 협상안은 완전하고 완벽하게 실패했다”며 “메이 총리가 굴욕적 패배를 마주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하는 튤립 시디크 노동당 의원은 심지어 이날로 예정됐던 제왕절개 출산 날짜까지 이틀 뒤로 미뤘다. 그는 “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투표에 참여했다”고 했다.
필립 카울리 영국 퀸메리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영국 정부가 주도한 법안이 100표 이상 차이로 부결된 사례는 1924년 단 3차례뿐. 1945년 이후 정부 법안이 가장 큰 차이로 패배한 건 1979년 소수 정부 당시 89표 차이였다.
○ “버틸 수 있을까” 메이의 정치 생명?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주도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부결을 예상하고 투표를 실시했던 그는 투표 전 수차례 “브렉시트 안이 통과돼도 사퇴는 없다”고 했지만 버티지 못했다.
노동당은 이번 안이 부결되면 이번 주에 곧바로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조기 총선을 선포한 셈이다. 조기 총선 조건은 두 가지. 하원 전체 의석 3분의 2 이상이 조기 총선 동의안에 찬성하거나, 총리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한 뒤 14일 이내에 새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할 때다.
메이 총리가 21일까지 제출하기로 한 소위 ‘플랜B’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현 내각이 붕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 내각에는 보수당 내 EU 강경파와 총리 중심의 온건파가 뒤섞여 있다. 어떤 플랜B를 들고 나오든 내부의 불협화음이 불가피한 구조다. 보수당 내에서는 “브렉시트 협상권을 총리실에서 의회로 가져오자”는 의견까지 나온다.
○ ‘시계 제로’ 브렉시트
전문가들은 향후 ‘브렉시트 번복’(노 브렉시트)부터 ‘EU와 아무 합의 없이 브렉시트’(노딜 브렉시트)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EU가 7월까지 브렉시트 발동을 미루는 방안을 준비 중인 가운데 EU와 단일 시장을 유지하면서 EU 사법권 관할에 들어가는 ‘노르웨이 모델’도 거론되고 있다. 노동당이 당론으로 브렉시트에 대한 제2차 국민투표를 밀어붙일지도 관건이다. 노동당 내부에서는 그간 제2 국민투표에 부정적이던 코빈 대표에 대한 압박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는 “영국은 ‘노딜 브렉시트’도 감당할 수 있다”며 “절대 EU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