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에 내년부터 공립초등교 파견 폐지-축소 요구
“투데이 이즈 스노잉(Today is snowing·눈이 와요).”
지난해 12월 서울 성동구 A초등학교 3학년 영어 수업 시간. 원어민 영어교사가 날씨를 묻자 아이들이 서툰 영어에도 주눅 들지 않고 큰 목소리로 답했다. 원어민 교사와 아이들은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면서 친구처럼 어울렸다.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부담이 줄었어요.” 아이들은 문법을 떠나 영어로 말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자신감을 얻어갔다. A초교 교장은 “원어민 교사 덕분에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데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서울지역 초등학교에서 이런 모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서울시교육청에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파견을 내년부터 폐지하거나 축소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희경 의원(자유한국당)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의 ‘2018년 2차 정책협의회 합의문’에는 ‘초등 원어민 교사제도 축소 내지는 폐지를 포함해 초등 영어교육 정책의 개선과 발전방향과 관련해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위원회와 협의할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다. 합의문은 지난해 11월 작성됐다.
원어민 영어교사들은 각 학교에서 주 22시간씩 한국인 교사와 짝을 이뤄 초등 3학년부터 정규 영어수업을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2022년까지 1450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부담하는 추가 비용은 없다. 학부모들은 “원어민 영어교사가 파견되니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에서 영어 자신감을 기를 수 있다”며 반겼다. 원어민 영어교사 파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파견 학교는 올해 432개교로 전체 공립학교 557개교 중 77%나 된다. 특히 원어민 영어교사 파견은 사교육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의 B초교 교장은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이야말로 아이들이 영어 자신감을 얻도록 원어민 교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교조는 원어민 영어 교사가 아이들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파견 폐지 또는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외국인과 비교해 한국인 교사들의 영어 수준이 뒤처지지 않기 때문에 굳이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원어민 교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원어민 영어교사 파견 확대사업은 일단 올해까지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전교조가 서울시교육청의 기존 방침과 역행하는 내용을 정책합의문에 포함시키면서 호응이 좋은 ‘초등 원어민 교사제도’가 폐기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의 협의 결과에 따라 내년부터 축소나 폐지될 경우 영어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초등생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현행 유지만 돼도 좋겠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